11년간 취재…다큐 제작 5천여만원 지원 호소

▲ 중국 동북3성 위안부 피해 할머니 故리수단

[일간투데이 류재복 기자] 지난해 5월, 중국 흑룡강성 동령시에 살고 있었던 위안부 할머니 리수단 할머니<사진>가 사망을 했다. 향년 95세, 이때 박근혜 대통령도 애도의 뜻으로 장례식에 조화를 보냈다. 리수단 할머니는 김좌진 장군이 잠들고 있는 해림공원 묘지에 안장됐다.

중국 동북3성에서 유일하게 생존하던 리수단 할머니가 떠나고 최근에 중국 후베이(湖北)성 샤오간(孝感)시에 살고있던 박차순 할머니가 95세로 별세했다. 이젠 중국에는 위안부 할머니가 아무도 없다. 리수단 할머니를 2005년부터 지난해 사망시까지 리 할머니의 생애를 취재한 기자를 만나봤다.

흑룡강신문CCTV 함명철 감독

흑룡강신문 빌딩 3층에 위치한 ‘흑룡강신문CCTV’ 감독인 함명철씨(63). 조선족인 함 감독은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 통역으로 흑룡강신문 리수봉 기자가 배석을 했다.

함 감독은 “리수단 할머니의 생애를 담은 20시간의 필름이 있지만 그것을 다큐로 완성하기 위해선 제작비가 한화로 5000여만원이 소요되기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사정을 털어놓았다. 함명철씨는 전 하얼빈TV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PD로 일했다.

위안부 출신 조선족 리수단 할머니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신분을 공개한 마지막 한명의 위안부였다. 그녀는 지난해 5월 17일에 헤이룽장성 둥닝현 양로원에서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23년 조선 평양부근의 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19세 되던 해 어머니가 병으로 앓고 있었지만 병치료 할 돈이 없어 전전긍긍 하던차 만주에서 여성 노동자를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중개인을 따라 나섰다. 그러나 노동이 아닌 당시 몇몇 조선인 여성들은 하얼빈 부근인 아성(阿城)지역으로 유괴돼 왔다. 아성은 당시 일본군의 하얼빈 이북 집거지였다. 리 할머니 일행 19명은 그곳에서 3개월간 훈련을 받고 5명의 위안부와 함께 러시아와 인접한 국경도시인 둥닝 현 위안소로 끌려갔다.

이때 리 씨의 나이는 꽃다운 19세, 이곳에서 그녀는 1941년부터 1945년 전인 23세까지 4년간 일본군을 위한 위안부로 살아야 했다.

악명이 높기로 소문난 둥닝 요새 부근 위안소에서 일본군의 성욕을 채우는 ‘성노예’로 혹사당하며 비참한 삶을 살다가 일제가 패망 후, 그녀는 중국에 남아 중국 국적을 얻고 위안부의 굴레에서 벗어나 결혼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그녀는 둥닝현 다오허(道河)진경로원, 둥닝현 사회경로원에서 노후를 보내다가 결국은 한많은 둥닝에서 세상을 떠났다.

리수단 할머니를 취재한 함 감독은 “같은 민족인 조선족으로서 리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할머니는 81세로 당시 조선말과 중국말도 못했다. 그러나 일본어는 잘했다. ‘얼마나 훈련을 강하게 시켰으면 일본어를 잘 할수 있을까’하고 놀랬다”고 말했다.

함 감독은 “너무도 처절한 삶을 살다가 떠난 할머니의 생애를 1시간짜리 다큐방송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며 “단지 리수단 할머니의 인간적인 삶, 그리고 전쟁이 인류에게 준 피해와 성의 노예로 살았던 한 여자의 한 평생을 인간적 차원에서 조명해 보고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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