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이 화두다. 먹고사는 문제는 인간 존재의 기본요건이다. 권력자는 권세와 명예, 더 많은 재물 등을 꿈꾸지만 소시민은 당장 오늘의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고사는 문제를 근본으로 여긴다.(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라고 사마천이 ‘사기(史記)’에서 강조한 이유이다.

그렇다. 민생이 도탄에 빠지면 공동체 존립을 위한 동력을 잃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질시와 증오, 갈등이 증폭되면서 국가발전의 에너지가 상실되게 마련이다. 당연히 살기 좋은 선진국가로의 발돋움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위정자들은 ‘민생 최우선 챙기기’에 나서야 하는 게 마땅하다.

■글로벌 경제 불황의 짙은 그늘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글로벌 경제 불황의 그늘이 짙다.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서민들의 삶은 날로 팍팍해져가고 있다. 급증하는 신용불량자·비정규직·청년백수,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들어서는 많은 은퇴자들, 점점 더 어려워지는 중소기업·골목상권·재래시장, 구조조정의 칼바람으로 거리에 내몰린 사람 등 절박한 상황들이 오늘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하루 세 끼 식사를 걱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을 정도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와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예컨대 최근 식탁물가가 치솟으면서 그러잖아도 힘든 주부들의 근심이 크게 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자영업이 붕괴되고 있다. 경기불황이 깊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오랜 경기 침체에 취업을 못한 젊은층이나 은퇴한 직장인들이 진입 장벽이 낮은 자영업으로 몰려든 데다 시장경기마저 악화되면서다. 대출금과 점포 임대료, 직원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을 손에 쥐기도 힘든 상황이다.

문제는 이들 자영업자들이 대부분 빚을 내서 창업을 시작했는데 매출 감소로 빚 부담이 가중되면서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80조4197억원으로 2010년말 96조6396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2015년 22조105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16조2506억원이 증가했다. 자영업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내수경제의 한축인 자영업자에 대한 구조조정보다는 소비진작을 통해 경제활성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자영업자 대출은 향후 내수경기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대출 건 별이 아닌 차주 별 종합적인 관리 강화가 필요할 것이다.

자영업이 무덤으로 변한 데는 이유가 있다. 자영업자 10명 중 6명은 50~60대 이상이다. 대부분 일에 치이고 집 장만, 자식 걱정만 하다 인생 2막을 고민할 겨를도 없이 은퇴를 맞은 이들이다. 신기술을 배울 시간도, 능력도 없다. 제대로 준비를 못했으니 먹고 살기 위해 너도나도 편의점이나 카페·음식점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서민 생계인 자영업마저 위기

그럼에도 정부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은 정보기술(IT)·바이오 등 첨단산업에 집중돼 있다. 고령층 대책은 공공근로 같은 임시직이 고작이고 그나마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설상가상 은행이 불경기에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타격이 큰 자영업자를 상대로 돈줄 죄기에 나서면서 상당수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신규 대출을 엄격히 제한하는데다 기존 대출마저 연장 없이 원금 조기 상환을 독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작정 돈줄을 막기보다 원리금 상환을 조금씩 늘려나가거나 부실 가능성 등을 고려해 대출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등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당국과 지자체, 금융권은 자영업이야말로 서민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생업임을 인식, 실효성 있는 지원책 제시가 시급하다. 시간이 없다. 자영업 활로 모색에 정책적 주안점을 둬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백성이 태평한 세상을 누린 시절의 공통점은 권력층이 천하에 해 끼치는 일을 하지 않고, 백성이 고루 잘살 수 있도록 헌신적인 선정을 베풀었다는 사실이다. 오랜 불황에 우리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경제마저 침체되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광풍이 불고 있다. 설상가상 북한 리스크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국정공백이 깊어져 한국경제의 활로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위정자와 공직자들은 국민의 삶을 돌보는 데 헌신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물망초심(勿忘初心), 백성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던 첫 마음을 잃지 말고! <황종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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