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대행사 올리브애드 CEO

데이트 중인 커플을 태운 승용차 한대가 도로를 미끄러지듯 주행하고 있다. 애틋한 대화를 나누던 남자가 갑자기 운전대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둘은 격정적인 키스를 나눈다. 차는 어떻게 되었을까? 장면이 바뀌면 자동차는 여전히 가던 길을 가고 있다. 남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기 전에 자동차를 자율주행 모드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친절하게도 계기판의 자율주행 모드와 유유히 사라지는 차 뒷면의 로고를 클로즈업하여 선명히 보여 준다. 자동차 PPL광고다.

PPL(Product PLacement)이란 영화나 드라마 속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상품을 노출시켜 간접적으로 광고하는 마케팅 기법 중 하나다. 원래는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할 때 소품 담당자가 영화에 사용할 소품들을 배치하는 업무를 뜻했다. 이의 광고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자 이제는 광고효과를 노리고 영화에 제품을 등장시킨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이 PPL 마케팅이 단순히 영화나 드라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현장 이벤트와 온라인으로도 급속하게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 2009년부터 간접광고 허용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간접광고는 허용되지 않았다. 당시 방송사에서 세트 촬영을 위해서는 많은 소품이 필요했고 그 소품은 대부분 업체로부터 제품을 협찬 받아 사용했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에서 약국이 배경으로 등장한다면 약국 안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양의 의약품이 필요했고 제작팀에서는 제약회사에 제품(또는 패키지)을 요청했다. 제작팀에서는 반대급부로 업체에 광고효과 보장을 약속하게 되고 업체에서는 광고효과를 위해 소품을 기꺼이 제공했다.

그런데 간접광고가 원천적으로 불법이다 보니 어쩌다가 드라마에 소품으로 나오는 제품의 제품명이라도 노출되기만 하면 그 프로그램은 간접광고로 지적을 받았고 담당 PD는 징계를 받았다. 따라서 제작팀에서는 심의에 저촉이 되지 않도록 제품명을 모자이크 처리한다든지 의도적으로 제품명을 가릴 수 밖에 없었다. 약속 불이행으로 업체가 항의하는 건 당연한 일.

이 뿐 아니라 드라마 제작비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반면에 제작 환경은 날로 열악해짐에 따라 드라마 제작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 기업체의 협찬이 절실하게 요청되었다. 그러나 간접광고가 허용되지 않으므로 해서 기업체의 협찬은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방송사와 제작사들의 끊임없는 요청에 따라 마침내 정부는 2009년 방송법을 개정하여 가상광고와 간접광고를 허용하게 되었다.

PPL은 초창기에는 대기업에서 주로 참여했다. 드라마에서 빼놓지 않고 단골로 나오는 PPL제품은 자동차와 휴대폰, TV, 냉장고 등 생활과 밀접한 제품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중소기업 제품들이 속속 참여하면서부터 1개의 드라마에 5~6개, 많게는 수십 개의 제품들이 PPL로 참여하고 있어 이제는 드라마가 간접광고 공해라고 할 정도로 많아졌다. 지난 달 21일에 종영한 tvN 창사 1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도깨비’의 경우 케이블TV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20.5%)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미디어오늘에서 1회부터 16회까지 모든 방송분을 확인한 결과 무려 270회의 PPL 장면이 노출되었다고 한다. 이는 1회 당 평균 17회 꼴이며 5회의 경우는 무려 33차례의 PPL 장면이 노출되어 이 드라마는 최고의 시청률 드라마인 동시에 가장 노골적인 ‘PPL드라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 '도깨비' 무려 270회나…'과유불급' PPL

그렇다면 PPL이 우리가 생각한 만큼의 효과가 있을까?

PPL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드라마의 주인공이 실제 그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고 브랜드 친숙도도 강화된다. 더구나 그 드라마나 영화가 히트하여 외국으로 수출되었을 때 제품의 해외진출도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반면에 단점으로는 PPL이 지나칠 때 드라마의 흐름과 몰입을 방해하여 오히려 시청자의 반감을 살 우려가 있다. 실제로 작년 최고의 드라마로 평가 받았던 ‘태양의 후예’의 경우에도 지나치게 많은 PPL제품이 등장하여 극의 흐름을 억지스럽게 했을 뿐 아니라 드라마인지 광고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오죽하면 드라마에서 송중기가 간식으로 자주 먹던 정관장 홍삼정을 빗대어 드라마 제목을 ‘홍삼의 후예’라고 했을까?

PPL이 좋은 광고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광고 예산이 적어 감히 TV광고는 꿈꾸지도 못하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자사의 우수 제품을 적은 비용으로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PPL로 참여한 드라마가 뜰지, 낮은 시청률로 조기 종영될 지는 드라마가 진행돼 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리스크는 항상 존재하고 있다. 더구나 지나친 기대감으로 광고 효과를 위해 제작사에게 무리한 극의 전개를 요구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절하게 PPL참여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정백 올리브애드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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