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여행 가기 힘들다

여행 복(福)이라고는 지지리도 없었던 막내 아들이 지난달 유럽을 다녀왔다. 드디어, 마침내! 부모에게는 손을 안 벌렸다. 대학 입학 후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경비를 충당했다.

이미 10여년 전 부터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 까지도 재학중인 학생들에게 간간이 국내외 여행을 갈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주로 중국이나 일본이 대상 지역이지만 멀게는 프랑스 등지로 떠나기도 한다. 명목은 여러 가지다. 고교의 수학여행이 대표적이지만 초·중학교도 현장학습, 자매결연학교 교류 등의 프로그램이 제법 마련돼 있다.

예전에 학교에서 여행 관련 안내문을 보내면 필요한 비용은 꼬박꼬박 납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내는 끝내 벗들과 동행하지는 못했다. 덜컥 몸이 아프거나 어줍지 않은 경시대회 시험 일자 등과 겹쳐 시간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초·중·고 시절에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하지 못했다. “나도 국제선 여객기에서 제공하는 기내식을 먹어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댔지만 끝내 미수에 그쳤다.

이번에도 순탄한 여행은 아니었다. 유독 막내는 외국 나가기가 왜 그리 힘든건지.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 식구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는 찬란한 해프닝을 펼친 후에야 한국 땅을 떠났다.

출국 당일인 지난달 하순. 가방을 질질 끌고 다니기 싫다며 배낭 하나 달랑 등에 매고 공항으로 향할 때 까지는 평온했다. 탑승 2시간 전부터 사달이 났다. 여권 유효기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아 영국 히드로 공항을 경유할 때 문제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카톡이 왔다. 참고로 영국 땅을 밟으려면 6개월 이상의 유효기간이 필요하다.

여행사와 외교부, 주한 영국대사관 등 여기저기로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같은 공항에서 비행기만 갈아타는 여행 일정이라면 상관 없을 것’이라며 ‘해당 국가에 들어가지 않으면 입·출국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이 최종 목적지로 향하면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단, 해당 국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법 큰 돈을 들여서 준비한 여행을 포기한다면 막내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가족 카톡방이 와글와글 끓었다. ‘출발편 비행기 바꿀 수 있나?’'단수여권 만들어서 내일 비행기 타야하는거 아닌가’ ‘외국 공항에서 국내로 강제 송환되는 것도 흔히 해 볼 수 없는 경험이 되겠지’등등 이런저런 글들이 난무했다. ‘(일단은) 그냥, 간다’는 막내의 카톡이 오는 순간 갑론을박이 끝났다.

이후 1분이 멀다하고 오던 막내의 카톡을 보기 어려워졌다.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여행은 평안했고 왕복 비행의 경유지였던 영국 공항에서는 아무 일이 없었다. 덕분에 온 가족의 여권 유효기간을 챙겨본 것은 덤이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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