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Ⅱ-Ⅱ 운명이 날이 밝아오다

조선 전 국토는 많은 부분이 일본군의 점령 하에 들어갔다. 바다에서도 경상 우수군과 좌수군이 무너졌고 이들은 제대로 전투를 해보지도 않았다. 미리 겁을 먹거나 스스로 전투를 포기한 것이다.

‘일본군이 바다를 건너오자 경상우수사 원균은 대적할 수 없는 형세임을 알고 전함과 무기들을 모두 물에 침몰시키고 수군 1만 명을 해시시키고… 육지를 찾아 적을 피하려고 했다. 선조수정실록 1592년 5월1일’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료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서도 죽음을 무릎 쓰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이 군인이다. 평소 전쟁을 준비한 이순신의 각오는 대단했다.

이순신은 타고난 군인이었다. 싸울 수 있는 함대를 점검하니 판옥선의 수가 24척이었다. 반면 조선에 상륙한 일본함대는 500여척으로 수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경상우수사 원균이 보유했던 판옥선 수 보 다도 훨씬 적은 숫자로 싸워야 했다. 이순신은 두려움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장계를 보면 당시 상황과 이순신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

‘새로 뽑은 정예의 사졸들은 모두 육전으로 보내고 변두리에 남은 진보에는 병기를 가진 사람조차 너무 적어 맨손으로 모인 수군들을 힘이 약하여 방어 할 대책이 없습니다. 탈영한자 2명을 찾아내어 우선 목을 베어 효시하고 군사들의 공포심을 진정시켰습니다. 남해에 붙은 평산포 등 네 개 진영의 장수와 현령 등은 일본군을 보기도 전에 먼저 도망을 하였습니다. 

신(臣)으로서는 경상도의 물길이 험하고 평탄한 지도 알 수 없고 물길을 인도 할 배도 없습니다. 또 작전을 상의할 장수도 없습니다. 경솔하게 행동한다면 뜻밖의 실패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신의 휘하에 있는 전함은 모두 30척 미만으로서 세력이 아주 약합니다. 관찰사 이광도 이미 이러한 실정을 알고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 명령하여 소속 수군을 신의 뒤를 따라 힘을 모으고 구원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오늘 적의 세력이 왕성하여 우리를 업신여기는 것은 모두 해전에서 막아내지 못하고 적을 쉽게 상륙하게 내버려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번 죽을 것을 기약하고 곧 범의 굴을 두들겨 요망한 적을 소탕하여 나라의 수치를 만에 하나라도 씻으려 합니다. 잘되고 못되는 것은 신으로서는 미리 알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단호하면서 결의에 찬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이순신의 장계 내용이다. 경상도의 진영에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부족한 병력과 장비로 전투를 수행해야하는 장수로서의 안타까운 마음이 장계에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순신은 탈영한 인원의 목을 베어 장대에 걸어 군법의 엄중함과 결사항전의 전투의지를 나타냈다. - 계속 -

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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