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10곳 중 6곳 작년매출·영업익 동시늘어
이익개선 불구 고용·투자 외면…"돈 쌓놓기만"

은행예금 작년 383조로 35조↑…6년만에 최대치
"불확실성 높아지자 투자처 못찾고 은행만 찾아"

[일간투데이 송호길 기자]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의 실적은 지난해보다 개선됐지만, 투자 대신 은행에 맡기는 돈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의 이익 개선이 고용·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100대 기업 중 지난 10일까지 발표된 75개 기업의 연결재무제표 기준 잠정실적을 집계한 결과 전체 매출은 1344조1074억원, 영업이익은 111조1037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대비 매출규모는 1.7%(21조9366억원), 영업이익은 12.4%(12조2976억원) 늘어난 것이다.

기업별로는 매출이 늘어난 기업이 전체의 77.3%인 58개사였고, 영업이익이 증가한 곳은 69.3%인 52개사였다. 이 중 매출과 영업이익이 함께 늘어난 기업은 44개로 전체 10곳 중 6곳에 해당하는 58.7%였다.

대표적으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기업은 네이버와 LG생활건강, 롯데케미칼, 아모레G, 고려아연, 우리은행, 엔씨소프트, 카카오, CJ제일제당, BGF리테일, CJ대한통운, 만도 등이다.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매출(0.6%)과 영업이익(10.7%)이 모두 늘어났다. 반면, 매출이 줄어든 가운데 영업이익이 늘어난 불황형 흑자기업은 전체의 10.7%인 8개사였다.

포스코의 지난해 매출은 53조835억원으로 8.8%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은 18.0% 증가한 2조8443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도 지난해 매출이 39조3173억원으로, 15.0% 감소했음에도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1조6419억원의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과 LG전자, 에쓰오일, 현대건설, 효성, BNK금융지주 역시 불황형 흑자기업에 속했다.

업종별 매출 증가율은 증권업종이 21.3%로 가장 높았고, 생활용품(16.3%), 은행(15.2%), 서비스(12.9%), 식음료(11.2%)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이처럼 기업의 실적이 개선됐음에도 투자하기 보다는 은행에 쌓아두는 돈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국내 기업들이 은행에 맡긴 돈은 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업들이 은행에 돈을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같은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현재 은행의 예금 잔액 1240조9736억원 가운데 기업이 예금주인 금액은 383조4597억원으로 30.9%를 차지했다.

기업이 은행에 맡긴 돈은 1년 전인 2015년 말보다 35조4043억원(10.2%)이나 늘었다. 연간 증가액이 2010년(52조523억원) 이후 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의 은행예금 증가율은 가계보다 훨씬 높다. 지난해 은행 예금에서 가계가 보유한 금액은 580조7260억원으로 1년 사이 21조5264억원(3.8%) 늘었다.

기업의 예금 증가액이 가계보다 13조8779억원 많았던 셈이다. 가계를 웃돌기는 2009년 이후 7년 만이다.

가계 예금의 증가액은 2013년 30조9066억원에서 2014년 28조8379억원, 2015년 28조6598억원, 지난해 21조5264억원으로 3년 연속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기업이 보유한 예금 증가액은 2012년 7조6871억원에서 2013년 7조7863억원, 2014년 10조5101억원, 2015년 26조7894억원, 지난해 35조4043억원으로 4년째 늘었다.

가계와 기업이 반대로 움직이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통상 가계는 은행에 저축하고 기업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경제 주체로 인식돼왔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과 경기 부진의 영향으로 기업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을 은행에 쌓아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익을 많이 내는 일부 기업들의 자금이 저금리에도 꾸준히 은행에 유입되고 있다.

이에 더해 한은의 자금순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비금융법인 기업들이 운영한 자금에서 빌린 돈을 뺀 '자금잉여'는 4조5000억원이다.

한은이 국민계정체계(2008 SNA) 기준으로 자금순환 통계를 작성한 이후 비금융법인기업의 여유자금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들의 이익이 투자로 충분히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은은 지난달 13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국내 기업의 이익 개선이 구조적 요인에 의해 고용이나 투자의 증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해외생산 확대 등으로 수출의 '낙수효과'도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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