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 변호사

장기간 점유 분묘기지권 인정
장사법따라 2001년 이후부턴
소유자 허락하에 한시 매장케


A는 원주에 임야를 소유하고 있는데, 해당 임야에 B가 1987년경 부친의 분묘를 A의 허락 없이 안치한 후 2011년경까지 A로부터 아무런 이의제기도 없이 제사를 지내면서 분묘를 관리해왔다. A는 2011년 12월경 B를 상대로 토지 소유자의 허락 없이 설치된 분묘를 이장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B는 A의 청구에 따라 분묘를 이장해야 하는가?


우리 대법원은 종래에 분묘를 설치한 후 20년 이상 평온 공연하게 점유해 온 경우,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고 이는 당해 분묘에 대해 제사봉사를 하는 한 계속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장사등에관한법률(이하 ‘장사법’)이 시행된 2001년 1월 13일 이후 설치되는 분묘는 기본 최장 60년간 한시적 매장이 인정되고, 이후에는 화장이나 봉안을 해야 하며, 소유자 등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설치한 분묘에 대해서는 분묘기지권 등의 주장이 금지된다.

따라서 2001년 1월 13일 이후에 토지 소유자의 허락 없이 설치한 분묘의 경우에는 아무리 오랫동안 소유자의 이의 제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분묘기기권을 주장할 수 없고, 당해 분묘는 이장을 하거나 화장을 해야 한다. 다만, 장사법은 시행일 이전에 이미 취득시효를 완성한 분묘에 대해서는 적용이 없으므로, 여전히 취득시효를 주장할 수 있다.

문제는 본 사안과 같이 장사법 시행 전에 설치된 분묘지만, 장사법 시행일 이후에서야 20년의 취득시효가 도과된 분묘에 대해서 종전과 같이 취득시효를 인정할 것인지, 혹은 장사법의 취지에 맞게 취득시효를 부인해야 하는지 문제가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최근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공개변론을 하면서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 대법관 8인의 다수의견으로 본건과 같은 경우에도 점유취득시효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B는 분묘를 설치한 1987년부터 2007년경까지 20년간 평온공연하게 점유해 왔으므로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록 다수의견은 위와 같았지만, 재판관 5인은 적어도 장사법 시행일 당시에 취득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분묘에 대해서는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수의견은 90년간 지속되어온 매장과 분묘에 대한 우리 관습을 지지하며 법적 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판단했다.

이와 같이 법원의 재판과정은 법률에 근거한 형식적인 판단과정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승인되는 규범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헌법, 관습법, 사회상규 등을 모두 고려해 기존의 법리를 재확인하기도 하고, 새로운 법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매우 역동적인 과정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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