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대행사 올리브애드 CEO

이 달 초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회적 약자보호 장관회의’란 것이 열렸다.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주재한 이 회의에서는 최근 항공기 승무원, 건물 경비원, 유흥업소 종사자, 대학원생, 백화점 점원 등에 대한 폭언·폭행, 그리고 아르바이트 청년에 대한 부당한 임금지급 등 이른바 ‘열정페이’ 등 우리 주변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갑질 사례에 대한 문제점과 대책 등이 집중 거론됐다. ‘갑질’이란 통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가 지위를 악용해 약자인 상대방에게 부당한 요구·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갑과 을은 원래 십간(十干)의 첫 번째와 두 번째를 나타내는 말로서 이것이 계약서에 쓰였을 때는 계약 당사자를 의미한다. 계약 당사자는 대등한 관계가 원칙이나 실제로는 우월한 입장이 갑이 되고 열등한 입장이 을이 된다. 우월한 입장이란 대개는 돈을 주는 쪽이다.

■ 광고배정권 따라 갑을 결정

광고업계에서도 갑과 을이 존재할까? 광고업계에서의 갑과 을은 흔히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의 관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과거 광고대행사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은 주로 매체사였다. 광고대행사가 생긴 후부터 광고주와 광고대행사는 어느 순간 갑과 을의 관계가 되어 버렸다. 엄연히 계약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고주는 광고대행사에게 계약기간과 관계없이 언제든지 광고대행을 중지시킬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로 광고 캠페인을 성공시켰다 할지라도 광고주는 수 틀리면 언제든지 광고대행을 중단시키고 그 캠페인을 다른 광고대행사에 맡길 수 있다. 그래도 광고대행사는 한마디 항변도 하지 못한다.

광고대행사는 광고주와의 관계에서만 을이 아니다. 매체와의 관계에서 있어서도 광고대행사는 언제나 을이다. 전파광고의 경우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에서 광고를 맡아서 진행하기 때문에 방송광고진흥공사가 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계약서에는 ‘공사’, ‘광고회사’라고 되어 있지만 업무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요즘은 미디어크리에이트 등 미디어랩이 생겨 경쟁관계가 조성이 되었고 매체 사정도 예전 같진 않아 이런 일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과거 코바코의 전파광고 독점 시절에는 코바코의 위세가 워낙 대단해서 광고대행사 매체 담당 사원은 광고공사에 들어갈 때 문에서부터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신문광고의 경우에도 광고대행사는 광고주의 이익을 위해 좋은 날짜, 좋은 지면, 저렴한 단가로 구매해야 되므로 늘 매체사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매체사에 대해서도 을의 위치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광고대행사는 늘 을의 존재인가? 광고대행사는 절대로 갑이 될 수 없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광고대행사가 매체사에 갑의 입장이 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것은 그룹사 계열의 대형 광고대행사의 경우 광고 배정 및 집행권이 광고대행사에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광고대행사가 갑이 된다. 결국은 광고 배정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갑을 관계가 결정되는 것이다.

■ '갑을 마인드' 벗어나야 진정한 파트너

그러나 광고라는 것은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되는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의 아이디어나 노력만 가지고는 광고가 이루어질 수 없다. 광고주가 직접 광고를 제작하고 집행했던 초창기 때와는 달리 이제는 광고주, 광고대행사, 제작사, 매체사가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한 광고를 제작하여 집행하려면 서로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광고인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광고업계에서 갑과 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마인드이다. 광고를 주는 입장에서는 갑의 행세를 하려 들고 광고를 받는 입장에서는 을의 입장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정한 파트너가 되지 못한다. 이제는 이미 이 사회가 많이 투명해지고 공무원 사회로부터 일반 기업까지 갑과 을의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다. 광고업계도 예전처럼 서로간에 상식에 어긋나는 요구를 하는 일도 많이 없어졌다. 갑과 을이 문자적 의미 그대로 계약 당사자로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때 광고주는 광고주대로, 광고대행사는 광고대행사대로 진정한 파트너로서 상호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백 광고대행사 올리브애드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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