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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읽는 이순신 傳]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 일간투데이
  • 승인 2017.02.2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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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Ⅱ 운명의 날이 밝아오다
드디어 1592년 5월4일 어둠이 짙게 드리운 여수 앞바다. 새벽을 가르는 이순신 함대는 적막한 가운데 긴장과 비장함이 함께 했다. 출정식에서 이순신은 휘하 장병들에게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을 강조했다.


이순신 자신도 목숨을 버릴 각오가 돼 있었다. 선조 임금에게 올린 장계에서 ‘잘되고 못되는 것은 미리 알수 없다. 다만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최선을 다 하겠다’는 결의였다. 조선의 군사와 백성들이 지레 겁을 먹고 도망하는 형국에서 결의에 찬 모습으로 힘차게 노를 저어 나아가는 모습은 예외적인 모습이었다.

노를 젓는 격군(格軍 노를 젓는 수군)의 팔에는 힘이 들어갔고 사수가 가진 활과 화살은 적을 향하고
있었다. 농사를 짓다 군에 입대한 사람, 남의 종으로 있다가 입대한 사람, 그릇을 굽다 들어온 사람 등 얼떨결에 이순신 휘하가 된 사람들이었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활을 한 번도 쏘아보지 못한 사람, 배를 처음 타보는 사람 등 다양한 신분과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임무를 주고 직능에 맞는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한 번도 전투경험이 없는 조선 수군이었다. 이순신은 하늘을 우러러 다짐 한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목숨을 걸고 싸우되 결과는 내 것이 아닌 하늘의 일이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면 그것으로 족함을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전장에서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담대함과 영웅의 기질을 지닌 인간이었다.

Ⅱ-Ⅲ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은 인간 누구나 그런 구석이 있듯이 외로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보름 전의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 인간적인 고통에서 일반 평민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추앙받는 영웅은 일상에 대한 성실과 노력의 결과이지 로또복권처럼 한 순간에 떨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비록 몸이 아프고 불편할지라도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어하며 상념에 사로 잡혀 있는 모습에서 그의 성품을 유추할 수 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이순신도 마찬가지였다. 군의 리더로서 책임지는 분야가 많고 고민하고 소통해야할 부분도 많았던 이순신도 가족에 대한 감정은 일반평민과 다를 바가 없었다.

군인으로서 삶을 살다보면 전쟁에 대비하는 업무를 늘 하지만 정작 전쟁을 접하거나 참가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다. 그 당시에는 조선개국 200년으로 평화로워 보였으며 섬나라인 일본이 쳐들어오리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던 분위기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 대륙에서 많은 침략이 있었지만 섬나라인 일본에서 쳐들어온 예는 보기 힘들었고 단 일부 전라도 지역에서 왜구들의 노략질이 성행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의 기습적인 침략은 조선 천지를 놀라게 하고 백성들은 고통의 신음소리가 온 나라에 메아리 쳤다. <계속>

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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