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지구촌을 혼란에 빠뜨렸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수락연설 안정감과 이후 행보가 시장에 긍정적으로 비쳤던 반면, 취임 이후에는 선거 기간에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당선 이후 주가, 금리, 달러 상승으로 기대감을 드러냈던 전세계 금융시장도 반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트럼프의 미국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이에 따라 세계 경제는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가, 그리고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연설과 이후 일련의 조치를 볼 때, ‘트럼프 미국’의 지향점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이른바 미국 최우선(America First)이다.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이다. 이는 교역 상대국들의 ‘불공정한’ 저가(低價)제품 탓에 자국의 산업과 기업이 손해를 입었고 일자리도 줄어들었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이민자들의 유입도 일자리 감소의 원인 중 하나로 본다. 불공정한 무역협정 및 상대국의 조치를 바로잡아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이 급격히 바뀌고 있고 미국 실업률이 이미 완전고용 수준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트럼프의 구상이 그대로 실현될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하지만 취임초기 ‘미국 우선’ 정책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심각성을 넘어 위기의식을 느끼게 한다. 여전히 초강대국인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데서 오는 불안 때문이다. 헤게모니는 한 국가의 경제·군사적 우월성과 세계를 이끌려는 의지에서 나오는데 미국은 자국 최우선주의로 이런 의지를 버렸고, 중국은 의지는 있지만 아직 능력이 없다.

■ 美 우선주의…헤게모니 부재로 글로벌위기 우려

미국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 1910~2003)는 1920년대 말 세계대공황의 원인을 헤게모니의 부재(不在)에서 찾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은 관세를 수단으로 한 극심한 무역전쟁을 치르며 제로섬도 아닌 공멸의 길로 들어섰다. 결국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 빠져들었다. 킨들버거에 따르면 당시 영국은 의지는 있었지만 능력이 없었고 미국은 능력은 있었지만 의지가 없었던 ‘헤게모니 부재’ 상태였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너무 닮았다.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 국가의 역설적 상황을 표현한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이 1960년대 주장한 내용으로,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지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현행 국제금융시스템의 근본적 모순을 뜻함)라는 게 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세계 GDP의 24% 정도에 그치지만, 달러는 전세계 외환거래의 88%, 외환보유고의 64%를 차지한다. 미국 이외의 국가들은 경상·자본 거래를 위한 예비적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실제보다 더 많은 달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체제는 미국에서 끊임없이 달러가 공급돼야 유지되는데, 이를 위해선 미국이 자국 상품보다 외국상품을 더 많이 소비하는, 즉 경상적자가 요구된다. 적자가 반가울 리 없는 기축통화 국가로선 딜레마인 셈이다.
미국이 자국 최우선으로 적자를 해소하겠다고 나서면 현 체제는 유지될 수 없다. 대안이 필요하다. 중국이 아직 미국의 대안이 아니라면, 그 대안은 2009년 중국이 제안했듯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을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달러가치의 하락을 유도할 수도 있다. 불행히도 이런 대안과 그 이행 과정은 G20, G7, 적어도 G2의 긴밀한 협력을 전제로 한다. 현재의 대립과 갈등을 감안할 때 매우 어려운 일이다. 

■ 트럼프 법인세 인하·국경조정세 도입 주목

트럼프 대통령은 2월9일(현지시간) “앞으로 2∼3주일 안에 세금 및 항공 인프라 개발과 관련해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대선 공약으로 내건 포괄적인 세제개편안 발표를 예고했다. 대대적 감세(減稅)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날 뉴욕증시에서 3대 주요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원·달러 환율도 폭등했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항공사 최고경영자(CEO)들과 가진 조찬 간담회에서 기업에 대한 감세와 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 기업이 지고 있는 전반적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세금 및 항공 인프라 개발과 관련해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세제개편안에는 트럼프가 공언해온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35%→20%) 방침이 가장 먼저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미국으로 들여올 때 세금을 일시적으로 3.5∼10%로 감면하는 조처도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국경 조정세의 도입 여부다. 미국 공화당이 하원에서 발의한 국경조정세는 기업제품이 판매되는 곳을 과세기준으로 삼아, 수출은 비과세하고 수입비용은 과표에서 공제해주지 않는 법인세제도다. 이는 수출기업에는 세금감면의 효과를 수입기업에는 세금인상의 효과를 불러온다. 하지만 국경조정세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칙과 어긋나 국제조세조약 위배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미국 내 수입물가 상승과 수출증가로 인한 달러 강세를 유발해 경제성장세를 제약할 소지도 있다. 게다가 품목별 과세를 위한 실무작업이 쉽지 않고, 세제도입의 영향이 업종별로 매우 다르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산층에게는 세금감면이 필요하고,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대선기간 최고 35%에 달하는 미국의 법인세율을 20%로 내리겠다고 공약했다. 그가 공언한 법인세율 인하 외에도 국경 조정세 도입 여부도 관심사다. 미국 공화당이 하원에서 발의한 국경 조정세는 기업제품이 판매되는 곳을 과세기준으로 삼아, 수출은 비과세하되 수입비용은 과표에서 공제해주지 않는 제도다.
이날(2월9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18.06포인트(0.59%) 상승한 2만172.40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장보다 13.20포인트(0.58%) 높은 2307.87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32.73포인트(0.58%) 오른 5715.18에 장을 마감했다.

■ 불확실성시대 안갯속 한국경제

한국 경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에 빠져 있다. 고도성장기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2%대 저(低)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대내적으로는 정치 리더십 실종과 투자·소비심리 위축, 대외적으로는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빌미로 한 중국의 경제제재 등에 직면해 있다. 한마디로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처해 있다.

으뜸가는 대외 불확실성은 단연 ‘트럼프 쇼크’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현대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급진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외정책은 군사동맹, 개방경제를 통한 공동번영,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3가지 원칙에 기반을 뒀다. 민주당과 공화당 행정부가 다자주의나 일방주의 등 힘의 표출 방식은 달랐지만, 이 원칙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동맹 불신, 국가 간 무역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중상주의, 민족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얼마 전 미-중(美中) 정상간 전화통화와 미-일(美日) 정상회담에선 ‘하나의 중국’ 원칙 인정, 미-일 안보동맹 재확인 등 안보 분야에선 기존 대외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에는 환율과 관련해 ‘공평한 운동장’을, 일본에는 ‘공정한 무역’을 강조했다. 통상 분야에선 강한 압박을 하겠다는 태도다. 압박의 강도는 예측불허다. 다만, 그가 이미 41살 때인 1987년 뉴욕타임스(NYT)에 자비 10만달러를 들여 낸 의견광고 내용이 지난 대선 공약과 거의 비슷했다.

■ 조속한 정치 리더십 확립과 내수진작 시급

이런 대내외적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 경제가 안정을 되찾기 위해선 3가지 도전과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 우선 탄핵 절차를 서둘러 정치 리더십을 가능한 한 빨리 다시 세워야 한다. 현재 안보와 통상 이슈가 경제에 큰 부담인 점을 감안하면 경제부총리의 리더십만으로는 난제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 사회경제적 파장이 큰 주력산업의 구조조정 이슈도 마찬가지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도 정치 리더십의 사실상 실종 상태에서 벌어졌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드 배치의 재검토도 불가피하다. 중국의 비공식적 제재로 영향을 받고 있는 업종이 엔터테인먼트, 관광에서부터 유통, 제조업까지 전방위적이다. 롯데그룹은 사드 부지 제공 탓인지 그룹의 최대 중국 프로젝트인 선양(瀋陽) 롯데월드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중국의 이런 압박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해 한·미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방어적 조치로 설명하지만, 중국은 이를 자국에 대한 공격적 행위로 간주한다. 중국이 이를 자국의 핵심이익을 훼손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묘안을 찾아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대외교역에서 과도한 미·중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으로, 빈곤·저소득층 지원 등을 통한 내수 진작에 나서야 한다. 무역선 다변화는 단기간에 이루기 힘든 과제다. 그러나 내수 진작은 현재의 재정 여력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단기 대응이 가능하다. 불황 속에서도 지난해 국세 수입이 전년보다 무려 24조7000억원이나 더 걷혔다. 이렇게 들어온 세수(稅收)는 취약계층 지원 등으로 민간에 되돌려줘야 경제가 선순환이 된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대외의존도가 가장 높은 편이다. 트럼프발(發) 글로벌 위기가 현실화된다면, 실물 및 금융 두 측면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반도체, 석유화학 제품 등에 힘입어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했지만 추세 반전이라기보다는 일시적 회복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수출 제조업은 현지 생산 확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경제적 관점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추진되지 못했던 서비스업 육성을 통해 내수 기반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문윤홍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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