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회장·본지 논설고문

제3국을 떠돌던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의 공항에서 독살됐다. 이복동생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보낸 여성 공작원 소행으로 추정된다. 국정원은 이를 ‘스탠딩 오더’라 했다. 취소하지 않으면 실행될 때까지 계속 유효한 주문을 뜻한다.

공산국가에서 숙청은 정적 제거를 넘어 체제 유지의 기능을 했다. 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활용한 것이 북한 김씨 왕조다. 1대 김일성은 1950~60년대에 남로당계, 연안파, 소련파에서부터 친위대였던 갑산파에 이르기까지 옛 동지들을 처형하고 그 피 위에 유일 지도 체제를 만들었다.

■ 김일성에서 내려온 잔혹의 유전자

잔혹의 유전자는 1970년대 초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로 이어졌다. 당시 김일성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도 김정일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당신들도 다 김정일을 받들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 신임을 바탕으로 김정일은 왕조의 궁중 숙청을 진행했다. 이른바 ‘곁가지’ 치기다. 계모인 김성애와 그 소생 김평일을 제거하고 친삼촌 김영주를 자강도로 추방했다. 그때 동독으로 쫓겨간 김평일은 평생 동구를 떠돈다. 지금은 체코 대사다. 재작년 평양을 방문했는데 36년 만이라고 한다. 김평일의 누나, 남동생도 북에서 살지 못했다.

김정일의 첫째 부인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이 1982년 한국으로 왔다. 이씨는 결국 1997년 북한 공작원 총에 맞아 죽었다. 그 성혜림의 장남이 이번에 독살된 김정남이다. 김정은 친모 고용희에 대한 우상화가 본격화된 것도 그즈음이다. 그때부터 김정남은 밀려나기 시작했다. 2009년 후계자로 결정된 김정은은 2013년 12월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고모부 장성택을 대공 화기인 고사총으로 죽였다. 고사총을 쏘면 사람이 벌집 되는 지경을 넘어 형체가 없어진다고 한다. 그 흔적조차 탱크로 뭉개는 경우도 있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장성택의 최후가 어땠을지 짐작 간다.

김정남은 3대 세습을 공개 비판하고 ‘김정은이 김일성의 외모만 닮았다’고 혹평했었다. 그러니 2012년 ‘가족을 살려달라’는 편지를 김정은에게 보냈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김정남에게는 아들 한솔이 있다. 김씨 왕조 가계도상으로는 4대 종손(宗孫)이다. 파리에서 대학을 마친 김한솔은 2012년 핀란드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향해 “왜 독재자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김정은이 그를 내버려둘지 모르겠다. 김씨 왕조 궁중 잔혹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국제공항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김정남을 살해한 그 대담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 위험한 독재자…‘체제교체’ 대비를

북한은 1983년 미얀마 양곤에서 벌인 아웅산 테러로 미얀마로부터 단교당했다. 더구나 김정남이 피살된 날은 북한이 ‘북극성 2형’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다음 날이다. 이동식 발사장치에서 신형 고체연료까지 장착해 가공할 정도로 발전한 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를 뒤흔든 직후 보란 듯이 이복형을 살해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여론쯤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다.

김정남은 북한의 급변사태 시 중국에서 ‘김정은의 대안’으로 모색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중화권을 떠돈 것도 중국의 비호를 의식했기 때문이란 관측도 나왔다. 김정은은 사실상 북한의 목줄을 쥐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도 감수할 정도로 위험한 곡예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된 고위 간부는 2012년 3명, 2013년 30여 명, 2014년 40여 명, 2015년 60여 명, 2016년 140여 명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관계당국은 파악했다. 이토록 불안하고 위험한 30대 독재자를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편안히 발을 뻗을 수 없다. 아무리 지금이 대통령의 유고 상태라 해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비롯한 외교안보팀은 긴밀한 한미일 공조체제를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의 ‘체제 교체(regime change)’를 비롯한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국론분열이라는 ‘내부의 적’부터 경계해야 할 때다.

나경택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회장·본지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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