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가지 않았던 새 길을 가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존폐 위기를 맞았다. 삼성과 LG, SK에 이어 최근엔 현대차그룹까지 전경련 탈퇴를 밝힌 것이다. 4대그룹 소속 회원사는 64개로, 전체 회원사의 10%에 불과하지만 전체 회비의 77%에 달하는 4대그룹이 모두 떠난 전경련 운명이 백척간두에 선 셈이다. 전경련 입장에서는 장기로 치면 ‘차포마상(車砲馬象)’을 다 뗀 꼴이 됐다.

무엇보다 4대그룹이 차지하는 위상과 무게가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탈퇴는 전경련에게 너무나 뼈아프다. 여기에 더해 오는 24일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을 추대하지 못할 경우 전경련은 해체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다.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온상‘이란 비판 여론 속에 허창수 회장 후임 찾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마지막 카드‘로 떠오른 손경식 CJ 회장도 전경련 회장직을 고사하고 있는 현실이다.

600여개 회원사를 둔 전경련은 설립 목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 발전’을 표방하며 재계의 맏형으로 불렸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2·3세 후계 경영체제로 전환한 대기업들이 늘면서 사무국을 이끌고 있는 이승철 상근부회장을 중심으로 정치적인 이슈만 쫓다 보니 전경련 본연의 역할과 멀어졌다는 얘기다. 이런 실정에서 우익단체인 어버이연합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에 이어 청와대 실세 개입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사건까지 연이어 터지면서 ‘해체설’마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이 해체된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전경련 내부에서 반세기간 이어져 온 정경유착의 그룻된 행태는 반드시 끊어내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기구이자 국내 경제현안에 대한 조사 및 정책연구의 역할을 담당하는 기구로서의 긍정적 역할은 지금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게 사실이다. 후임 회장을 추대 후 한국경제의 싱크탱크(think tank)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재탄생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