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그룹 포함 주요 회원사 이탈로 명성·운영비 손실 커
24일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 선출·개혁안 논의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 경제개발 역사의 산증인으로 재계와 정부의 가교 역할을 했던 전경련이 지금 부패와 정경유착의 원흉으로 꼽히며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다.

초대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을 비롯해 정주영 현대 회장, 김우중 대우 회장 등 당대 내로라하는 대기업 회장들이 관례적으로 맡던 회장직이 십 여 년 전부터 그 선출을 놓고서 이런 저런 잡음이 들리더니, 이제는 선뜻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우리나라 정치·경제를 강타한 '비선 실세' 최순실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전경련이 주도해 대기업들이 최씨 일당의 '미르·케이(K) 스포츠 재단' 등에 수백억원의 후원금을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여론은 따가워졌다.

비록 22일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전경련 해체 촉구 결의안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야권 정당들과 대선주자들을 중심으로 전경련의 해체의 목소리가 강력히 나오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의식한 주요 회원사들이 잇달아 전경련 탈퇴를 표명함에 따라 전경련은 존립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삼성을 비롯해 현대와 SK, LG 4대 재벌의 탈퇴는 이들 그룹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비중에 따른 상징성도 크지만, 우선 당장 전경련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이들 그룹이 부담했기에 전경련으로서는 치명적이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이들 4대 그룹은 전경련 연간 회비 492억원 가운데 80% 가까운 378억원을 납부했다. 국민여론의 매서운 질책과 비판 앞에 다른 600여개 회원사들도 탈퇴 대열에 속속 합류하면 전경련은 기업계의 대표라는 명성과 운영자금이라는 실리 모두를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기총회가 열리는 24일은 전경련의 운명을 가늠하는 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는 지난해 12월 허창수 회장의 사퇴 이후 공석 상태인 전경련 회장의 선출 여부가 판가름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이사회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기에 이날 전경련의 미래, 개혁방안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경련의 개혁방안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견이 존재한다. 진보적인 학자들은 전경련이 과거 경제개발시기부터 현재의 민주화시대에 이르기까지 정경유착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개혁이 아닌 해체를 주장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경제학) 교수는 "전경련은 박정희식 정부주도 경제개발 전략을 수행하는 하위 파트너 역할을 했다"며 "최순실 게이트를 비롯한 현 박근혜 정부의 실패로 박정희 모델의 파산이 드러난 만큼 전경련 또한 역사적인 소임을 다했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보수적인 학자들은 경제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서 전경련은 계속 존재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부 특임교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시민에게는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익집단을 조직할 권리가 있다"며 "기업인들 또한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기업인단체를 만들 수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전경련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기업인의 의견을 충분히 표명할 수 있는 법적인 단체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있다"며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도 상의라는 법정 단체를 통해서 하지, 우리처럼 소수의 특정 재벌을 위한 로비단체로서 전경련 유사 조직은 없다"고 반박한다.

한편, 경제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로서의 역할보다 더 폭 넓게 정부부문과 민간부문의 협치(Governance) 측면에서 전경련의 역할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에 최순실 일당의 미르·K 스포츠 재단 후원금 모금 사례에서처럼 이른바 '준 조세'를 오남용한 경우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정부재정으로 모두 해결할 수 없는 민간영역과 중첩되는 '회색영역(Gray Zone)'에서 전경련의 준 조세 모금 활동이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단적인 예로 세월호 사고 당시 전경련이 주도해 기업인들이 단기간에 1000억원을 모금했다"며 "아마 정부예산으로 그 모든 자금을 마련하려했다면 예산확보과정이 오래 걸려서 사고 피해자에게 신속한 도움을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고 덧붙인다.

이에 대해,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부 교수는 "현재의 전경련 모금 방식은 각 그룹별로 할당하면, 그룹은 다시 계열사별로 할당하는 식이다"며 "그 과정에서 각 개별 계열사의 이사회는 허수아비 노릇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 교수는 "기업 이사회가 자금 출연 대상과 목적, 규모에 대해서 인지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사회의 승인이라는 법적인 절차를 거쳤기에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이사회가 기업 총수의 불법적인 자금 유용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현재의 상법 구조로서는 그런 예외적인 사례 때문에 전경련의 역할이 의미있다고 볼 수 없다"고 비판한다.

대신에, 김 교수는 전경련이 소수 재벌들의 직접적인 이익대변기구 역할을 하기보다는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the Heritage Foundation)'처럼 시장원리와 철학에 기반한 정책현안을 제시하는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기를 주문한다. 헤리티지 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의 변신은 지난해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제안한 방안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기업계의 이익대변 기구로서 성격을 계속 유지한 채로 전경련 쇄신을 외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며 "전경련이 순수 연구기관으로서 그 성격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거론되는 개혁안이 미국식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 Table)모델이다. 기부나 재단 설립 등 사회협력 활동을 하지 않아 정경유착 논란을 미리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책팀 간사는 "미국의 BRT는 로비스트가 합법화된 미국법의 허락 범위 내에서 로비활동을 펼치고 있다"며 "로비스트법조차 제정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그런 로비단체를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정경유착을 계속하겠다는 말이다"고 비판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개혁안을 놓고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4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기업들이 속속 탈퇴하면서 큰 위기를 맞고 있는 전경련의 미래에 대해서, 윤창현 교수는 "당분간은 기업들의 회비 납입이 크게 줄어서 임대료 수입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긴축경영에 들어갈 것이다"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여론도 진정되고 전경련의 여러 개혁이 구체화되면 다시 조직을 추스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박상인 교수는 "전경련이 국민들에게 진정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보이려면 이제까지 불법 로비활동에 썼던 자금들을 활용해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한 공익법인을 만들어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전경련의 입김은 전혀 작용하지 않도록 독립성을 확보시켜야지 그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한다(전경련 정관 제1조)'을 설립목적으로 밝히고 있는 전경련이 이제까지의 오명을 씻고 경제인단체의 맏형이자 재계의 대변자 역할을 자부한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24일 정기총회의 운명의 시간은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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