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사랑DNA

지난해 결혼한 큰 딸이 지난 토요일에 모처럼 친정 나들이를 왔다. 제 남편과 함께. 늘 활달하고 개방적인 성격이어서 며칠 전부터 예고를 했던 터였다. 방문 당일에도 전화와 카톡으로 도착 예정시간을 알려 왔다. 진작부터 “맛있는 거 많이 준비 해 놓으라”는 주문을 했던 건 당연하다.

딸이 시집을 가고 보니 간혹 올 때마다 은근히 음식 준비에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부모 품안에서 자랄 때는 적당히 차린 밥상에 둘러 앉아 한 끼를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어쩌다 밥솥이 텅 비어있을 때는 제가 알아서 배달 시켜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이른바 ‘남의 집 사람’이 되고 난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백년손님이라는 사위 대접도 소홀히 하기는 어렵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 가진 뒤 제 짝을 만나서 분가하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건 큰 오산이었다. 오히려 ‘아프지는 않은지’ ‘뭐, 부족한 건 없는지’ ‘출산 계획은 있는지’ ‘시댁 어른들과는 잘 지내는지’ 등등 궁금한 것들만 부쩍 늘고 말았다.

고기를 좋아하는 딸은 갈비찜 정도면 대부분 OK 사인을 낸다. 물론 ‘돼지갈비 말고 소갈비'라는 요구가 충족됐을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다. 집에서 만들기엔 준비할 것도 많고 번거로워서 동네 음식점에 들러 바리바리 포장을 해서 가져왔다. 요즘 물가가 워낙 비싸서 그럴듯한 가족 행사가 있는 날에나 맛을 볼 수 있는 특식이다.

딸의 혼사 이후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속담의 의미를 체험(?)하고 있다. 시집 간 후 한 동안은 가끔 집 구석 어디선가 맏이가 툭 튀어 나오면서 ‘아빠’하고 부르는 듯 하기도 했으니까. 그저 덤덤한 수준의 부녀 사이였지만 막상 제 서방 따라 분가하자 이라도 빠진 듯 허전함이 찾아오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온 가족이 함께 한 식사 자리는 웃음으로 가득했다. 지나간 얘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담은 말들이 두서없이 섞인 채 한 공간 위를 둥둥 떠다녔다. 손아래 처제와 처남에게 곰살맞은 사위의 입도 진작부터 열렸다. 식구(食口·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는 이래서 정겨운 모양이다.

다음 날이 일요일이니 푹 쉴 수 있다며 느긋하게 놀던 딸 부부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갈 채비를 했다. 그 사이에 아내는 물김치며 젓갈 등을 검은 봉지에 담기 바빴다. 문득 장모님이 딸에게 이것 저것 챙겨주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네 엄마들의 자식사랑DNA는 어찌 그리 한 치도 틀림없이 판박이로 대물림 되는 것인지.

“집에 도착한 뒤에 통화하자” “알았어” 차를 타고 출발하기 전에 모녀가 나누는 대화의 레퍼터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데자뷰다. 장모님과 아내가 주고받는 말도 똑같으니. 도로가 좀 막혔던지 밤 11시가 넘어서야 휴대전화가 걸려 왔다. 오후 내내 부엌을 오가느라 몸이 피곤했으련만 아내는 딸과의 통화를 끝낸 뒤에야 잠이 들었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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