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송해

방송인 송해 선생
어느새 아흔을 넘겼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따라다니는 것은 세월이 준 커다란 훈장같은 것으로 봐도 좋을 듯 하다. 최고령 현역방송인 송해는 30여년을 진행해온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국민 연예인으로 꼽힌다. 화면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활기차다. 꿀잼을 불러내는 진행을 하지만 슬그머니 서민의 애환도 전한다. 시청자들을 배려하는 그의 건강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많은 이들은 송해의 자기 관리와 노력, 품성을 선망하고 존경한다. 오랜 세월동안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서 있는 자체가 전해주는 상징적 의미의 무게는 묵중하다. 이에 본지는 송해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비결을 들어봤다.

[일간투데이 이인규 기자]

◇ '송해길'이 생기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종로 낙원동이라 하면, 대한민국 1번지 등 예부터 문화의 거리, 문화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오진암 같은 큰 요정(정치인들의 밀실 정치)들도 곳곳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왔었다.

멋쟁이들이 많이 찾던 곳인데 요새는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아무래도 많이 침체됐다. 전통적인 가게들도 많이 없어졌다.

또, 낙원동 일대가 파고다 공원과 가까이 있어 자꾸만 어르신들 길로만 변하는 게 안타까웠다. 주민들과 구청이 다 함께 모여 문화발전과 지역 발전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 생기게 됐다.

◇ 앞으로 '송해길 보존회' 운영 계획은.

대한민국 종로구 낙원동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 기념품 가게도 만들고, 저에 대한 것 또는 옛것을 재현해도 좋을 거 같다. 우리가 문화를 전통적 으로 이어가는 것이 많지 않다. 춘향전, 심청전, 놀부전 등 많지 않은가. 그런 것들을 짤막하게 줄여서 거리에서 공연했으면 한다.

또, 가마타고 말타던 옛날 결혼식을 진행해 보고 폐백 드리는 것도 하면, 국내 사람뿐 아니라 관광온 사람들도 재밌어 할 거 같다.

소나무 심기 운동도 하려고 했었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기상을 상징한다. 그런데 그 소나무 심기 운동이 더뎌지고 있다. 허가라고 할까 승낙 하는 데가 서울시에서 민간협의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 25개구의 가로수 가꾸는 것은 그 회의에서 결정을 해야 한다. 아직 그 절차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 앞으로 '송해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종로구 낙원동에 생긴 송해 길을 계기로 앞에서 말한 문화 활동 노력들이 빛을 발하길 바란다. 이 지역 문화발전에 공헌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 큰 영향력을 가지신 분들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옛날과 달리 이런 책임을 우리도 점점 더 중요하게 느낀다. 임금체불로 고생하는 청년 아르바이트생들을 후원하는 '송해 청년SOS펀드'도 있다. 송해 펀드에 제1호로 가입한 분이 정세균 국회의장이다.

초등학생에서 대학생까지 다 같이 의장실에 들어가서 대담도 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이런 활동들이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묶어서 지난해에 '나는 딴따라다'란 책을 내기도 했다. 특히 지금 90세 전후의 국민들은 정치 변화 상황 이라든지 상권이 생기는 것 등 문화 경제적으로 다 보고 경험한 세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렇게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국민들과 대화를 할 땐 소통은 기본인 듯 하다. 그래야 함께 얘기하는 이들에게 넉넉한 위안과 편안함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니까 저도 좀 더 생각이 깊어지게 됐다. 그래서인지 갈수록 국민들과의 소통을 좀 더 중요시하게 되는 거 같다.

◇ 송해 선생님에게 마이크란.

마이크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된다. 제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1호라고 나 할까. 제일 갖고 싶은 1순위인 만큼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오래 함께 하고 싶다.

지난달 28일 종로구에서 '송해길 보존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엔 '영원한 방송인' 송해 선생 등 행사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이인규 기자

◇ 후배들이 선생님을 닮고 싶어 하는 데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옛날 내 고향 황해도 해주라는 곳에는 음악전문학교가 하나밖에 없었다. 그 곳에서 배웠는데 나중엔 그게 기본 소양이 됐다. 그래서 악극단에 들어가서 지방공연을 많이 다녔다. 그리고 사회자(mc)를 하게 됐다.

그 당시 악극단 같은데선 노래 하나만 하는걸론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노래도 하고 스케치도 하고 악극도 하고 한 사람이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을 해야 했다. 그래야 봉급이라도 받지 그렇지 않으면 끼니 거르기가 십상이었다. 그렇게 악극 생활을 해보니까 배추장사와 엿 장사 등 놀이꾼도 해봤던 것들이 어느 샌가 기본이 됐다. 지금까지 쌓았던 경험 들이 다 무기가 된 셈이다.

mc에게 정말 어려운 건 사람 이름 외우는 것이다. 이름 석 자중 한 자만 틀려도 딴 의미가 된다. 엄청나게 큰 실수가 되는 것이다. 후배들한테는 "사회자가 그날의 무대에서 소개해 드리는 사람보다 돋보여선 안 된다"고 말한다. 사회자는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 자신이 관중들, 혹은 시청자들께 알려드리는 그날의 초대자를 화려한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 좀 과한 얘기로 하자면 '죽은 나무에서도 꽃을 피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회자니까 돋보여야 돼' 이렇게 하는 건 제대로 된 자세가 아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사회자는 다 내려놔야 된다. 이런저런 소양을 계속 쌓아가는게 숙명이다.

최근 바람직한 건 노래자랑하면서 선생이 학생들과 같이 나올 때가 있다. 꼭 친구들과 노는 거 같고 소통이 아주 잘 되는 것 같다. 그건 매우 바람직하다. 옛날엔 선생님이 어려워서 감히 그림자도 못 밟았었는데 말이다.

◇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조언 한마디한다면.

물론 자격증을 많이 가져야 좋다는 사람도 있다. 어떤 분야의 기술이라도 다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게 좋다. 옛날부터 '열 가지 제주 있는 놈 이 삼시 끼니를 간 데가 없다'고 했다. 이처럼 능력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집중을 못한다. 한두 가지만 전문으로 해야지 전체를 다 하다보면 다 수준이하가 될 수가 있다. '하나를 집중적으로 익혀서 내거를 만들라' 이렇게 말하고 싶다.

본인 적성에 맞는 거 찾아서 하면 된다. 요샌 신생 일거리가 많지 않는가. 새로운 직업이 많이 생기니까 전문대학교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부연하자면, 우리나라 입시경쟁도 힘들지만 교육 방법 자체에도 혼돈이 많은 듯 하다. 부모나 학생,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데 이런 게 좀 덜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 때문에 조금 제도 개선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우리 조상도 옛날에 했다 이런 자신감만 있으면 충분하다. 요즘 위기라는 말들이 많은데 충분히 극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 마지막으로 송해 선생님의 올해 계획은.

항상 소망하고 있는 것은 빨리 남북통일이 돼서 황해도의 우리 고향에 가서 "전국노래자랑 송해가 이제서야 왔습니다" 이 말 한번 꼭 하고 싶다.

우리 지구상에 분단된 국가가 대한민국 하나 남았다. 우리는 완전히 물하고 기름이다. 아직까지 어떤 실질적인 소득이 없었다. 당연히 통일을 원한다.

평화적인 통일을 해야한다. 만약에 전쟁을 통해 한쪽이 없어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섬찟한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적인 통일이 당장은 어렵겠지만 남북대화가 우선 시작이 되면 좋겠다. 서신왕래라도 되어야 하고, 조금 진보하려면 면회소를 차리면 될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평화통일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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