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세상이 미쳐가는 듯한 광기의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집안에 미친 사람이 있으면 미치게 한 사람도 있다. 미친 사람은 불쌍하거니와 미치게 한 사람은 얄밉다.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미쳐 가는 것일까.

블랙리스트, ‘요주의 인물 명부’에 관련됐다고 해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이 줄줄이 감옥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는데, 막상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영문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저 막연하게 박근혜 정부가 요주의 문화예술인들의 명부를 작성한 것으로만 알 뿐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인과관계는 알지 못하는 것 같다.

■ 좌파문화계 편중 지원했던 참여정부

그 원인에 의한 결과를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예술의 본질부터 살펴야 하겠다. 영국의 화가이며 비평가인 R.E.프라이는 “진정한 예술과 사이비 예술의 차이는 예술가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관념의 표현의 차이이며 예술만이 순수한 것”이라고 본질적 성격을 가름한 바 있다. 진정한 예술과 사이비 예술 사이에는 순수와 비순수, 순정과 욕정의 차이로 가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소급해서 과거를 돌아보면, ‘문화계 화이트리스트’를 관리한 노무현 정권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노무현 정권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해먹는 솜씨가 놀라웠다. 지금보다는 일사불란하고 세련되게 해먹은 게 차이가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만든 것은 좌파성향 문학 영화 연극 미술 등에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좌파문화진지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좌파문화인단체인 민족예술인총연합회(민예총)에 국민혈세를 몰아주었던 것이다. 민예총 예산은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종전보다 5배가량 급증했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지원으로 인해 문화계는 좌편향으로 기울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을 우파 문화인들은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래도 검찰은 이런 불법이 자행되고 있는 데에도 청와대나 문체부를 수사하지 않았다. 언론과 국회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은 밝은 대낮에 자기들의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맞는 좌파문화인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하이에나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좌파정권에 비해 요즘의 우파정권 구성원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요즘의 특검 논리대로 한다면, 좌파문화계 인사들을 편중 지원한 당시 문화부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들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해야 마땅하다.

그 흐름이랄까 내림으로 이어진 게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그림이다. 가령 ‘부정선거(父情先巨)’라는 그림은 부채와 방울을 들고 점을 치는 한복차림의 박근혜 대통령 뒤에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있다. 옆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 인물들이 있다.

이 그림을 경찰의 눈으로 보게 되면 대통령을 조롱하는 중대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참여정부의 예술인들이다. 이러한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다가 오히려 발목을 잡힌 게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 현정부 '좌편향' 균형잡으려다 ‘발목’

박근혜 정부에서는 왜 말을 못하는가? 좌편향 문화계를 균형 잡으려는 차원에서 손을 댄 게 아닌가. 지나치게 정치편향 논란을 낳은 인사와 작품에 대해 엄격한 심사를 벌였다는 말을 왜 못하는가?

예술은 순수와 참여로 구분된다. 이 순수와 참여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필요불가결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도 참여가 정치 현실적이다. 나의 경우, 참여정부에서 현금에 이르기까지 10원 한 장 지원받은 적이 없다. 개인 뿐 아니라 문예지를 15년간 펴내는 데도 역시 10원한 장 지원받은 적이 없다. 노무현 참여정부 때 하이에나들이 자기들만 뼈다귀까지 발라먹고 싹쓸이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체념한 채 살아왔다.

문인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감하게 체험해 실감하기 때문에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침묵하는가?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너무도 심대해 어처구니가 없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말을 잃은 상태였다. 그러나 소중한 양심을 거리의 노숙자처럼 아무 곳에나 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라도 나서서 진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신장하기 위한 수단이지, 타인의 명예훼손까지 허용하는 무제한의 권리가 아니다. 헌법 21조에도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황송문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위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