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Ⅱ-­Ⅲ.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

문제의 발단은 전라좌수영의 지휘관인 이순신의 보고와 경상우수영의 지휘관인 원균의 입장을 적은 보고가 동시에 전달됐을 때 약자의 입장인 원균에 대해 온정적일 수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선조의 오판이 전쟁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었다. 감정적인 성격에 전체를 읽어내는 능력이 부족했던 선조는 전쟁을 더욱 혼란스런 상황으로 만들고 있었다.

Ⅱ-Ⅳ. 일본의 반간계와 백의종군

이순신의 두 번째 백의종군에 관한 이야기다. 그 당시 이순신은 두 가지 사건에 연루돼 죽음으로까지 내몰리게 되는 상황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에 의한 반간계(적의 첩자를 이용해 적을 제압하는 계책) 사건과 부산 왜영 방화사건이다.

이순신이 함정에 빠지도록 유도한 사람은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그는 반간계로 이순신을 통제사에서 끌어내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순신이 살아있는 한 일본은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한 계책을 꾸민다. 계책을 수행한 사람은 일본의 장수 고니시 유키나카의 부하인 요시라였다. 그 당시의 요시라는 일본과 조선을 오가는 이중간첩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일본의 또 다른 장수 가토 간에는 알력이 심했다. 서로 간의 전공싸움이 대부분이었다. 고니시 유키나카는 가토가 부산 진영으로 300여척의 일본 군선을 이끌고 상륙할 날짜를 알려줬다. 이는 요시라를 잘 알고 지냈던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알려지고 권율에게 전해지게 된다.

권율은 선조에게 비밀장계를 보낸다. 적의 움직임을 잘 알 수 있는 기회이며 적을 이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명령해 부산진영으로 들어오는 왜선을 공격하도록 했으나 이순신은 출전하지 않는다. 이순신은 조정과 권율이 일본에 속고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적장끼리의 알력이라 해도 적국인 조선에게 같은 편인 일본군의 동태를 알려줘 패하게 만든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실제 가토는 300여척의 함대로 부산 진영에 상륙했다. 이순신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앙금이 쌓여있던 선조는 분노했다. 전장의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을 이순신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부산 왜영 방화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1596년 12월 12일 명나라 도사 호응원이 선조에게 보고한다. ‘일본진영에 불이 나서 가옥 1천여 호와 화약이 쌓인 창고 2동, 병기 등 군량 2만6천여섬이 든 창고가 한꺼번에 다 타고 일본 군선 20여척과 일본군 34명이 불에 타 죽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순신의 휘하 장군들과 현지주민들이 힘을 합쳐 일본군의 진영에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는 장계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계가 도착한다. 이조좌랑 김신국의 장계였다. 내용은 체찰사 이원익의 휘하 수군인 허수석 등이 부산의 왜영을 불사른 공로자라는 내용이었다. 조정에서는 설왕설래했다. 동일한 내용인데 공로자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경위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조좌랑 김신국의 장계가 신뢰성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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