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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곡선생 뜻 따라 ‘명문 사학’으로 발전시킬 터"육민관고등학교 '오명철' 이사장 인터뷰
오명철 육민관고등학교 이사장.

설립자 일곡 홍범희선생, 농촌계몽운동에서 시작
강원도 최초 사립학교로 71년 역사 간직
고교평준화후 실력향상… 수도권大 80명 진학

직계 가족이 운영하는 사학재단 운영에서 탈피
학생·교사 소통활발로 혁신·창의적 학교로 발전

꿈의 실현을 위해 학생들에게 빛이 되고 길이 되어주는 학교가 있다. 바로 강원도 최초의 사학인 육민관고등학교다. 육민관 고등학교는 ▲인성, 창의성, 실력에서 최고인 당당한 학교를 만들면서 바른인성과 품위를 갖추고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사람을 육성하는 교육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알며 더불어 살아갈수 있는 사람을 육성하는 교육 ▲어려움을 극복할 줄 알며 미지의 세계에 창의적으로 도전할 줄 아는 사람을 육성하는 교육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당당한 실력을 갖춘 사람을 육성하는 교육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오직 참된 교육만을 지향하고 있다. 개교 71주년을 맞은 육민관고등학교 오명철 이사장을 만나보았다. <편집자 주>

[일간투데이 류재복 기자]

‘육민관’이란 교명의 유래는

육민관고등학교의 설립은 농촌계몽에서 시작이 됐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일곡 홍범희 선생님은 낙후된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강원도내 최초의 사립학교인 육민관을 설립했다. 


1945년 일곡선생은 기를 육(育), 백성 민(民), 집 관(館) 즉, ‘백성을 가르치는 집’이라는 뜻으로 평소 일곡선생의 교육관과 철학이 집약된 명칭으로 당시 광복된 조국의 내일을 이끌어 갈 젊은 백성들을 모아 훌륭한 인재로 길러내는 집을 지어 세상에 알린 것이다. 


당시 이 학교는 농촌계몽운동의 성격도 있어 ‘일하면서 배우고 우리의 이상을 살리자’는 설립이념도 함께 했기에 출발자체가 매우 뜻깊었다.

일곡 홍범희 선생은 어떤 분인지

1917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선생님은 호가 일곡으로 원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서울제2고보(현재 경복고), 보성전문(현재 고려대) 법과를 졸업, 일본 중앙대를 거쳐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을 한 수재로 1948년 5·10 총선에서 제헌의원에 당선돼 민의를 수렴하면서 정치를 했던 분이다. 


또 서당형식의 육민관이 정규 중학교로 인가를 받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6·25때는 경남지구계엄사 사령관 고문으로 위촉돼 후방지역의 치안유지와 피난민 구호사업에도 노력을 했다.
그의 나이 35세에 내무차관(청와대경호실장 겸임)에 취임해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으며 특히 청렴결백한 성품과 공사구분이 확실해 혼탁했던 당시의 내무행정에도 헌신적인 노력을 한 분이다.


5·16 군사정변때는 박정희 장군의 등용 요청에도 완곡히 거절하고 1970년 8·15행사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 받은 후 2년만에 56세를 일기로 안타갑게 세상을 떠나셨다. 

교내서 가장 오래된 창육관은 어떤 곳인지

1946년 봄 육민관의 3훈(참된 실력·굳센 자주·따뜻한 협조)이 정해지면서 육민관의 교육방침이 알려지자 학생들이 점점 늘어났다. 1954년 3월 1일 16명의 첫 졸업생이 배출되자 일곡 선생은 육민관을 새 터전으로 옮기기로 했다. 


1953년 8월 23일 현재의 부지에 첫 삽질을 시작으로 일곡선생이 다니셨던 보성전문을 모방해 비행기 동체와 날개를 상징하는 제트기모양의 V형 석조전을 건립했는데 현재는 우람하고 자랑스러운 위용을 드러내면서 육민관 전체의 심볼이 됐다.

직계가족이 아닌 오명철 선생의 취임 배경은

설립자이신 일곡선생님의 제자다. 육민관고등학교에 입학을 할때는 나이가 많은 학생, 군대를 갔다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는 일곡선생님이 이들을 친 자식처럼 보듬어주시면서 향학열을 불태우게 하는 것을 보고 재학시절 크게 감명을 받은 바 있다. 


그 후 서울에서 중국진출의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다가 2004년에 일곡선생의 둘째 아들인 홍기덕 이사장의 제의로 이사에 취임했다. 
사실 중고교사 경험도 없고 법인업무도 전무해 사양했지만 홍 이사장의 어드바이스를 받으면서 직무를 했고 그 후 다시 홍기덕 이사장에게 넘겨주었는데 홍 이사장이 2015년 3월에 타계해 다시 이사장을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육민관고교의 역사, 그리고 현재 현황은

‘일하며 배워서 우리 이상 살리자’라는 설립이념, 그리고 ‘참된 실력, 굳센 자주, 다뜻한 협조’라는 교훈에 굳건한 소나무, 부드럽고 화사한 개나리를 교목, 교화로 정해 강원도 최초의 사학으로 발전해온지 71년의 역사가 됐다. 


1946년 3월에 육민관을 설립하신 일곡선생은 1952년에 육민관고교 설립인가를 받아 신입생 120명을 받았고 1954년에 첫 졸업생 16명을 배출했다. 1987년에는 학교를 중·고등학교로 분리시켰다.


현재는 교사·교직원이 75명, 30개 학급에 학생수 1100명으로 ‘바른인성과 알찬 실력을 갖춘 창의적 글로벌 인재육성’이라는 교육목표를 두고 그 안에 △세종과학교실 운영 △수학경시대회 실시 △심화과학반캠프운영 △진로진학컨설팅 등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실력인 △창의적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자주인 △예의와 품격을 갖추고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협조인이 되는 교육에도 목표를 두면서 ‘명품교육으로 거듭나는 창의인재 육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보람 있었던 일은

사학이다보니 교사채용 청탁이 많다. 그래서 교육청과 교사채용협약서를 썼다. 즉 우리 학교 인사위원회에 교육청에서 3배수의 채용인원을 주면 기타 고교와 기관에 있는 분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엄정하게 심사하고 교사를 채용하는 것이 가장 보람있다. 때문에 우리 학교에서는 신규교사 임용 비리는 일절 없다.

육민관고교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강원도 최초의 사립학교로서의 자긍심, KBS도전골든벨 참여로 학교가 알려진 사실, 어느학교 보다도 인사를 잘하는 학생, 그리고 인사를 잘 받아주는 선생님들이 있다. 
또한 매주 토요일마다 실시되는 동아리활동대회, 교과경시대회, 2013년 고교평준화이후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대학에 진학한 학생수가 80여명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동문들의 지극한 모교사랑으로 동문음악회 및 동문미전 등이 자랑거리다.


교사와 학생간에 소통이 잘되고 있다는 점도 있다. 학생들이 찾아오기 좋은 교무실환경을 만들고 선생님을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웃으면서 반기고 아껴주는 교육적 열정을 보여주는 소통. 즉,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과거의 풍토와 달리 반대로 학생들에게 인정받고 기억이 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강원도 원주시에 자리한 육민관고등학교 전경.

김철희 교장 “정년퇴직까지 열정갖고 임할 것”

기자는 이날 오명철 이사장을 인터뷰하면서 배석을 한 김철희 교장에게도 교장으로서의 경영방침에 대해 질문을 하자 김 교장은 “창의인성 교육강화로 즐거움과 건강이 넘치는 행복한 학교, 학교 교육력 제고로 교육력이 살아있는 생동감있는 학교, 맞춤형 진로진학지도를 실시하면서 꿈을 실현하는 학교, 학교문화혁신 및 교육활동지원 확대를 위해 보람을 느끼는 학교로 경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김 교장은 “비선호학교였던 우리 학교가 계속해서 언론을 통해 우수학교로 소개가 되고 있는 현실, 그리고 저 역시 그간 교직에서 34년의 잔뼈가 굵었지만 이곳 육민관고등학교에서만 26년을 봉직해 오고 있다”며 “정년퇴직을 하는 그 날까지 역사에 걸맞는 학교로 열정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오직 애국·애족·애교심을 갖고 육민관의 발전에 힘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교내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전인 창육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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