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가 시험대에 섰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일본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이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갈등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한반도가 그야말로 격동의 정세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리더십과 전략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가운데 주변 강대국들이 한국을 빼고 한반도 상황을 논의하는 '코리아 패싱' 현상마저 심화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한국은 외교 리더십의 실종으로 이에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코리아 패싱을 막을 수 있는 외교 전략조차 보이지 않는다. 사드 배치, 대북 제재,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 등 주요 외교·안보 문제에 있어서 정치권이 서로 상충되는 견해를 쏟아내고 있는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안보 문제를 둘러싼 심각한 '적전 분열' 행태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지혜롭고 유연한 한국 외교가 요청된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 중 세계 주요2개국(G2)으로까지 자리매김 되는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이 날로 가열되고 있고,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 핵과 탄도미사일로 무장한 호전적 북한의 변수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앞길에 거친 풍랑이 일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려 하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를 추진하면서 핵탄두 모형 탑재 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적 도발에 나서고 있는 게 뒷받침하고 있다. 탈북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가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등에서 북한이 올해 추가 핵실험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면 한반도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된다. 핵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 지형이 근래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제대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15~19일 있었던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한·중·일 3국 방문 일정은 한국 외교에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한국에서 사드 보복 자제를 강조했던 틸러슨 장관은 막상 중국에서는 사드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을 '가장 중요한 동맹국'으로 표현한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중요한 파트너'라고만 밝히기도 했다.

틸러슨 장관이 한국 방문 시 공식 만찬 일정이 없었던 것도 논란이 됐다. 일본 방문에서는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의 만찬 일정을 소화했던 것에 대비되는 행보였다. 한국 측의 만찬 초청이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틸러슨 장관의 방한 일정은 일본과 비교할 때 무게감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에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소외되는 현상이 드러난 단적인 예다.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등 온 국민이 격동의 세계정세를 헤쳐 나갈 지혜를 모으고 단합해야겠다. 한반도 주변국은 모두 확고한 국내 지지를 기반으로 한 강성 리더십이 안정적 정책여건 속에서 작동하고 있잖은가. 한국이 처한 외교·안보 여건은 미국, 중국, 일본, 북한 발 4각 파도가 동시다발로 도전을 제기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임을 직시하자. 자칫 구한말의 ‘실족’을 되풀이할까 저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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