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산업부 이욱신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교토삼굴(狡免三窟). 지혜로운 토끼는 세 개의 굴을 뚫는다. 우선 당장 편하다고 굴 하나만 뚫은 토끼는 천적이 굴 입구를 틀어막으면 꼼짝없이 죽는다. 천적을 피해서 은신할 곳을 여러 군데 만들어 놔야 안전하다. 흔한 말로 플랜B를 준비해야 한다.

요즘 우리나라 형편이 고약하게 됐다. 자고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위치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양 세력이 부딪힐 때마다 대리전장이 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조마조마하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를 이끌며 자유무역을 설파하던 미국이 아무리 제 코가 석자라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중국은 또 어떤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발표 이후 나오는 여러 금한령(禁韓令, 한국산 물품 또는 서비스의 구매를 금지하는 중국정부의 조치)을 보노라면 G2로서 미국과 새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논하던 대국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전후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전략적인 자국 시장 개방과 정부 주도의 공세적인 수출확대가 맞물리면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 눈부신 성장의 역사였지만 한편에서는 미국 경제에 너무 의존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냉전의 해체는 미국이 더 이상 과거처럼 경제적 지원을 해 줄 수 없음을 의미했다. 바로 이 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 중국시장이었다. 지리적인 가까움으로 중국 시장은 내수시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중국시장의 단꿈에 젖어 있을 수 없게 됐다. 중국 말고는 이렇다 할 교역상대국이 없는 북한이 중국의 동북3성 경제로 편입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최근의 사드 논란은 오히려 우리 경제가 중국 시장에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냈다.

다시 교토삼굴을 떠올려 보자. 이전에는 중국시장이라는 외굴에만 의지했지만 이제 동남아, 중동, 중남미 등 신흥시장에 여러 개의 굴을 뚫어야 한다. 이런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좋은 성과를 내면 중국 시장에 대한 교섭력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아울러 중국 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우리 제품을 구매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확고한 기술력이라는 굴을 뚫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나라가 중국에 수출하는 제품 대부분이 원자재와 제조업 부품·장비이고, 중국의 불매 운동 대상이 되는 소비재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상대가 펀치를 날릴 때 카운터 펀치를 생각하고 멈칫거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단단한 기술력을 가져야 외통수에 몰린 토끼가 안 된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