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교과서란 교과가 포함하는 지식체계를 쉽고 체계적으로 간결·명확하게 편집해 학생들의 학습의 기본자료가 되도록 한 학생용 도서를 말한다. 초·중·고교교육과 같은 보통교육의 과정에 있는 학생은 사물의 시비나 선악을 합리적으로 분별할 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가치편향적이거나 왜곡된 학문적 논리를 스스로 비판해 선별적으로 수용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의 관여는 불가피하다.

■ 겁박당한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교재에 대한 국가 관여는, 국정·검정·인정제도로 나눌 수 있다. 국정제(國定制)란 국가가 직접 저작한 교과서 이외의 교재를 인정하지 않는 제도이며, 검정제는 국가가 사인이 저작한 도서에 대해 교과서로서의 적부를 심사 확인해 교과서로서 사용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인정제는 국정 및 검정도서가 없을 경우, 사인이 발행한 도서의 내용을 심사해 그 사용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세계 각국은 그 나라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이들 중 어떤 제도를 전용하거나 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초·중·고교교육과정에서 국정제·검정제·인정제를 병용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국정제가, 중고등학교에서는 검인정제도가 일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전문지식을 추구하는 대학이상의 교육과정에서는 교과서제도는 적합하지 않기에, 대학의 교재에 대해서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다.

얼마 전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문명고 사태를 보면서, 생각이 다른 편에 대한 도 넘은 비난과 겁박이 일상화되는 것 같아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문명고는 전국 5847개 중고교 가운데 유일하게 연구학교로 지정됐는데, 전교조 등 외부인이 교장실을 찾아와 거칠게 항의하면서 연구학교지정 철회를 요구했고, 지정철회대책위가 구성돼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도 넘은 겁박에 입학식도 파행으로 끝났다. 학교 측은 담당교사가 국정교과서로 수업을 못하겠다고 해 기간제교사를 모집 중이란다. 국정교과서를 참고자료라도 쓰기 위해 신청한 학교들도 외부의 공격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학교이름조차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생각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유사한 사태가 3년 전에도 있었다. 부산 부성고는 좌편향 교과서에 맞서 뉴라이트 학자들이 만든 한국사 교과서(교학사 간)를 채택했다가 전교조 등 진보단체 들이 학교에서 철회를 요구하는 바람에 많은 몸살을 앓았다. 당시에도 20여개 고교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가 전교조 등의 거센 반발에 철회한 바 있다.
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용 도서는 학교의 장이 선정할 수 있고, 국정도서와 검정도서가 모두 있는 경우에는 국정도서와 검정도서 중 선정하게 돼 있다(‘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3조). 합법적 절차에 따른 교과서 선정 및 연구학교 지정에 대해서도 이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허용된다. 이는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장실까지 난입해 막말을 퍼붓고 위협적인 행동을 벌이는 것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될 수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해 업무방해가 되고 교육의 자율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된다.

■ 획일성 반대하다 강요하는 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하나의 역사관으로 국민의식을 개조하려는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이미 여러 교과서중 하나가 된 국정교과서를 막는 것은, 국정화를 반대하는 다양성 논거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다양성을 외치다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고, 획일성을 반대하면서 획일성을 강요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합법절차로 선택한 결정에 대해 어떤 학교도 국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동시에 교육의 다양성 및 자율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지극히 비교육적 처사에 해당된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다른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접근은 다원적 사회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행위이다. 국정교과서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운명은 학교의 선택에 맡겨져야 한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지만, 검정교과서의 일종이 된 역사교과서를 못쓰게 강제하는 사회는 더 건강하지 못하다.

김학성 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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