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우리 헌법 제119조는 제1항에서 우리의 경제질서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제2항에서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방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이며, 여기에 경제민주화가 등장한다. 경제민주화란 경제영역에 대한 사회정의의 실현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극단에서 발생된 실질적 불평등 및 새로운 경제권력에 대한 통제를 목표로 한다.

■ 시장경제 대신해 관치경제 득세

우리나라에서도 경제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그 한 예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위한 동반성장위원회를 들 수 있다. 이 위원회가 정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로 중소기업의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경제권력에 대한 통제로서 정당화된다. 그렇다고 재래식당이나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의 입점을 제한하는 것이 언제나 타당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시장경제는 ‘경쟁’을 통해 게으름과 나태를 통제해야 하고, 무풍지대에서의 안주를 허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그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특혜를 받은 회사만 살아남고 정작 일자리는 늘지 않으면서 경영진만 과실을 누리는 것으로 전락 돼서는 안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좌파 노무현 정부는 2007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폐지한 반면, 우파 이명박 정부에서는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또 경제민주화는 공사기업 임원의 임금을 통제하는 ‘살찐 고양이 (방지)법’의 제정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살찐 고양이’란 턱없이 과도한 봉급을 챙기는 자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월가의 탐욕스러운 은행가를 비꼬는 말로 쓰이면서 널리 알려졌다. 작년에 발의된 최고임금법을 보면, 민간기업의 임원에게 최저임금의 30배를 초과하는 임금을 받지 못하게 하거나, 공공기관 임원의 임금을 최저임금의 10배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다. 사기업의 임금을 ‘직접’ 통제하는 것은 국가의 규제범위를 벗어난 문제로 보여지나, 공공기관의 임원에 대한 임금통제는 필요하고 가능하다. 2015년 기준으로 공공기관 320개 중에서 차관급 보수를 넘는 기관이 257곳이나 되며, 두 배 이상인 기관도 15곳이나 된다고 한다. 심지어 3-4배를 지급하는 곳도 여럿 있다고 하는데, 매우 부당하다. 국가의 강력한 규제가 요구된다.

■ 체제변혁 통한 ‘부의 쏠림’ 해소를

임금이나 재산의 지나친 불균형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유재산제도는 사유재산의 심각한 불균형이나 분배구조의 극단적 왜곡을 보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의 쏠림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 문제다. 2011년 최고 부국인 미국에서도 ‘월가를 점령하라’는 격렬한 시민투쟁이 있었고, 2010년에 튀니지를 시작으로 촉발된 아랍의 분노는 민주화요구였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부의 쏠림에 대한 저항이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의 일종인 양극화 해소를 내뱉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며 감동도 전달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경제민주화로 표를 얻는데 성공했지만, 그의‘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역시 구호였다. 복지를 통한 사회통합은커녕 소득불평등 확산으로 갈등과 불화만 더 키웠고, 이에 그치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를 그 내용으로 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가, 우리의 경우 그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에 사회를 덧붙이면 시장경제가 보완돼 더 나은 경제질서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시장경제는 사라지고 정치가 이를 대신하면서 관치경제로의 변형이 이뤄지고 있다.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기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보장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의 규제가 경제민주화는커녕 경제의 흐름을 망치고 있고, 이에 더 나아가 부의 지나친 쏠림마저 외면하고 있다. 부의 쏠림이나 지나친 편재는 정권교체를 넘어 ‘체제’변혁을 요구한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도 이래서 만들어졌다. 실질적인 경제민주화가 간절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김학성 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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