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명나라 수군장인 진린의 성격이 괴팍하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은 이순신은 진린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 협조해 일본수군을 궤멸시키고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어 했다. 이때 권율로부터 이순신에게 편지가 도착했다.

“전 선전관 편에 들었소. 통제사 이순신이 상중이라 고기도 먹지 않아 여러 장수들이 건강이 나빠질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사정이야 어떠하든 나라일이 한창 중대하고 고비에 있음을 깨달으시게. 옛 사람의 말에 전쟁에 나아가 용맹이 없으면 효가 아니라 했소. 전쟁에 나아가 용맹을 떨치는 것은 초라한 반찬으로 건강이 나빠지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오. 예기(禮記)에도 원칙을 지키는 경(經)이 있고 임시방편을 취하는 권(權)이 있으니 모든 일을 원칙대로 지킬 수만 없는 것이외다. 그대는 내 뜻을 참작해 소찬을 그만하고 육식을 하는 임시방편을 쫓도록 하시오”

권율이 이순신을 위해 고기를 보내면서 쓴 편지내용이다. 맹자는 통상적인 상황에서 존중해야 할 원칙을 각각 경과 권으로 나눌 것을 제안했다. 경은 언제나 변하지 않은 원칙을 말하고 권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임시방편을 말한다. 소찬은 고기와 생선이 들어있지 않은 밥상이다. 전장에서 싸워야 하는 장수가 힘이 없어 싸울 수 없다면 그것도 효가 아니라며 은근히 이순신의 건강을 염려해 고기를 선물하며 편지까지 전달해준 권율의 마음이 고마웠다.

전쟁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군은 안전하게 조선에서 철수할 것만을 원하고 있었다. 명나라 장수 진린은 일본군을 안전하게 보내줄 것을 희망했다. 진린의 입장에서 볼 때 싸워서 득(得)보다는 실(失)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일본군을 협공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난중일기에서는 부분적으로 전투상황이 그려지긴 했지만 마지막 전투장면은 기록될 수 없었다. 마지막 기록은 1598년 11월17일까지만 기록돼 있다. 이순신이 전사한 날은 1598년11월19일로 노량해전이 끝난 날이다. 인간 이순신은 사망하고 역사의 영웅 이순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인간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영웅 이순신은 해전사에 남게 됐다.


Ⅱ-Ⅵ 임진왜란과 이순신 승리전략

해전에 대한 내용은 이순신이 왕에게 올린 장계의 내용과 난중일기 그리고 다른 자료에 의해 재구성했다. 특히 이순신이 왕에게 올린 장계에는 해전의 상황과 전과 등이 잘 기록돼있다. 장수들의 이름과 구체적인 해상전투의 내용이 잘 묘사돼 그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난중일기에는 오히려 일상의 이야기와 전투하기 전의 내용이 많이 기록돼있으며 세부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전투도 많이 발견된다. 아마도 이는 전투 중이라 일기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유추된다. 전장상황은 이순신을 재조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인지라 역사자료와 현지정찰을 통해서 재현해보았다. <계속>

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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