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권리와 인간존엄 어떻게 판단해야 되나?

 

[일간투데이 황한솔 기자] 극심한 질병으로 고통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인위적인 행동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안락사.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윤리적·법적·의학적·종교적 문제로 여전히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면서 안락사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데요. 일간투데이에서 안락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 2008년 박할머니는 폐종양 검사를 위해 내시경시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술 중 갑작스런 과다출현으로 심장이 정지됐고, 마사지를 받았지만 저산소성 뇌손상이 찾아와 결국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가 됐습니다.

이후, 병원에서는 박할머니에게 인공호흡기를 통해 숨을 쉬게하고, 튜브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연명치료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 것뿐이라며 중단을 요구했고, 병원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박할머니가 약물과 기계에 의존한 기간이 길어지자 자녀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법원은 연명치료에 대해 “원인이 되는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질병의 호전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치료에 불과”하다며 연명치료 중단 요구가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 2009.5.21. 선고 2009다 17417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의 판결을 받고 나서야 박할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해 세상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 서울 성복구에 거주하는 권할아버지는 2012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식물인간 상태인 아내 유할머니를 요양보호사와 함께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수년간 식물인간 상태인 할머니를 보살피던 할아버지에게도 병마가 찾아왔습니다. 

자녀가 없던 권할아버지는 자신이 죽고 난 뒤, 홀로 될 할머니가 걱정되자 고통스럽지 않게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자신이 직접 할머니에게 안락사를 시행했습니다. 할머니의 코에 연결된 음식 주입호스에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투약해 살해한 것입니다. 권할아버지 역시 약을 복용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했지만 할아버지 부부를 돌봐주던 요양보호사의 방문으로 무사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할아버지의 안락사 행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인가?'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갔으니 '살인죄로 처벌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내의 존엄한 죽음을 위한 행위로 보고 '살인죄에 대한 책임을 덜어줘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안락사>는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 행위로 인한 죽음을 맞게 하는 것입니다. 
안락사에는 고통 받고 있는 환자에게 약제 등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 당기는 '적극적 안락사'와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이나 약물투여 등을 중담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하는 '소극적 안락사'인 두 종류로 나뉩니다.

<존엄사>는 최선의 의학적 치료를 진행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불가능해 사망 단계에 이르렀을 때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서 죽음을 앞당기는 것입니다.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는 비슷한 맥락을 띠고 있어 동일시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안락사와 존엄사의 합법화에는 의학적·윤리적·종교적·법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우선, 의학적으로는 반드시 의사의 진단을 통해 행해져야 하는데 의사가 약을 환자에게 투여함으로써 "의사는 살인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윤리적인 문제는 경제적 부담감 때문에 "인간인 환자를 죽여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비윤리적인 행위이며 환자에게도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앗아가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종교단체들은 "생명은 신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고통에 계속 시달리는 환자나 그런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에게 안락사란 '소리 없는 강요'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안락사를 주선한 스위스의 비영리기관  '디그니타스'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자국인이 아닌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 기관입니다.

디그니타스는 의사 등 타인이 독극물을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자가 자발적인 의지를 갖고 자신의 손으로 강력한 수면제를 복용하거나 주사하는 방식으로 정확한 용어로 말하자면 조력자살을 합니다. 조력자살은 완전한 판단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끝내기를 원하는 개인이 치명적인 약을 스스로 투여하는 것입니다.

디그니타스는 안락사를 신청한 한국인은 지금까지 18명이라고 밝혔지만 이들 중 실제 몇 명이 안락사를 시행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락사를 하려는 한국인이 아시아 중 가장 많다고 전했습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1월 국내 65세 이상 인구가 699만명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5169만 명인 전체 인구의 13.5%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고령화의 빠른 진행속도로 인해 국내 노인 자살률과 노인 빈곤률은 OECD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없는 노인복지 인프라와 불안정한 노년의 삶이 홀로 남겨질 병든 배우자를 위한 '살인'이 되기도 하며, '자살'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마지막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안락사는 생명의 존엄성을 격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 안락사를 합법화함으로 죽음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가고 있는데요. 우리 사회도 안락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명확한 헌법적 차원의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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