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미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교육학 박사

필자는 지니(가명, 필자의 자녀)와 함께 한 23년 삶의 체험을 지니의 생애포트폴리오 연구라는 틀로 그려내어 201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아스퍼거 여성의 삶에 대한 종단적 사례연구).

장애인가족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 장애라는 복병은 순식간에 가족의 삶 전체를 뒤흔들어 버린다. 필자는 장애아부모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두려움을 알고 있다. 장애라는 벽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으며, 그 어떤 방식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장애아 부모가 가지는 두 가지 큰 질문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장애자녀와 함께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이다. 이는 장애가 현실임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질문이다.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특수교육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석사과정을 시작하며 펄 벅의 ‘자라지 않는 아이’를 읽게 됐다. 이 책을 통해 필자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의 동기를 얻었다.

한 아이의 생애는 그 아이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살아내고 있는 삶의 기록과 현장이다. 특수교육이나 장애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연구들은 대체로 그들의 부족한 점과 결함에 집중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지원의 필요 및 과정에 대해 논의한다. 필자는 수요자로서 특수교육현장을 직접 경험한 부모임과 동시에 특수교사라는 독특한 위치에 있으므로, 특수교육현장을 다르게 살펴봄으로써, 과정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삶의 모습을 역동성 있게 그려보고 싶었다. 필자는 언어발달이 늦은 지니와 소통의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2세 남짓 되었을 때, 지니의 손을 잡고 종이에 그리기 놀이를 시작했다. 놀이의 영향으로 인해 마주보기 수준에서 정서교류 정도가 가능한 4살에 사물에 대한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내었다. 의식 속에서 경험으로 쌓여진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이었던 것 같다.

지니는 지적장애라고 진단받았고, 발달장애라고 재검사 받았으며, 또 한 번의 재검에서 자폐성 장애인으로, 마지막으로 아스퍼거인 임을 확인받았다. 장애라는 범주에 넣고 한 개인을 보게 되면, 한계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한계를 제시하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제한 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지니를 장애를 가진 개인, 한계를 가진 개인이라는 면에 주목하며 살아오지 않았다. 지니는 독립된 개인이며 한 가족의 일원이다. 독립된 개인이라는 측면에서 지니와 함께 한 시간들은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시간들이었고, 삶 속에서 지니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에 집중한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주어진 삶을 감내하며 찾아낸 성과들이었기에 필자와 지니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말할 수 있다. 장애부모의 삶이 험난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들의 연속이지만, 주어진 만큼의 고통을 수용하고 감내하면서 삶의 내공을 쌓아가며 스스로 극복해가는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었으므로 하나의 사례로 드러낼 수 있었다.

정은미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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