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가

둘째 딸은 취업준비생이다. 이른바 취준생의 일상을 지켜보는 마음이 그다지 편안하지는 않다. 아비 된 입장에서는 ‘그저 아무 곳이라도 취업을 해서 무탈하게 잘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제 어미도 내 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속내는 나와 어슷비슷 한 듯싶다. 이 땅의 취준생 부모들 마음은 다 ‘거기서거기’에 머물러 있을 터이다.

둘째는 지난해 가을 학기에 대학을 졸업했다. 스펙을 쌓아야 한다며 외국 연수도 다녀오고 하느라 6개월 정도 늦어졌다. 졸업과 동시에 외국계 광고회사에 들어갔지만 “뜻한바 있으니 다시 뭔가를 해 보겠다”며 같은 해 하반기에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 그 후 8개월 정도 취준생으로 지낸다.

뜻한바가 무엇인지 나와 아내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어려서 자녀들 키울 때에도 공부하라는 얘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진로를 정할 때도 가족들이 온갖 아이디어를 내면서 분위기만 조성했을 뿐 결국 최종 결정은 자신들이 했다. 스스로가 택한 길을 가게 되면 설령 나중에 후회가 찾아오더라도 감당해 내기 쉬울 거라는 취지에서였다.

식구들이 제 방에 드나드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우리 집에서는 출입금지 구역에 가깝다. 그저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며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매진하고 있으려니 생각할 뿐이다. 부모로서는 둘째의 골방생활 기간이 아주 많이 길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올 가을 쯤, 늦어도 내년 봄 정도에 현재와 같은 상태를 마감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내는 늘 한결같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산전수전 다 겪는 과정에서 쌓인 내공 덕분일 것이다. 궁금한 게 많을 법도 한데 둘째에게 꼬치꼬치 물어 알아보려하는 법이 없다. 많은 엄마들이 “너, 요즘 뭐하니?‘ ’공부는 잘 되니?‘ ’잘 될 가능성은 있는거야?‘ ’어디를 가려고 하니?‘라고 묻다가 딸들과 감정을 상한다. 그러다가 자칫 골이 깊어지면 모녀 전쟁까지 벌어지고 마음의 상처까지 깊게 파이기 십상이다.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라고 나도 둘째에게 별 말은 안한다. 사실 자녀들이 크고 나니 집에서 마주쳐도 데면데면 그냥 지나치게 된다. 굳이 예민한 부분을 들춰내 ‘긁어 부스럼’ 만들 까닭도 없다. 어쩌다 가족들끼리 모여 말을 주고받을 때가 되면 자연스레 속사정을 제 입으로 털어놓기도 한다. 뭐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풀리는게 좋고 그게 우리 삶의 순리일게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란 영시가 둘째에게 힘이 되었으면 해서 전해본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후략)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나는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나는-/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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