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조선 함대는 전선 28척, 협선 17척이었다. 어선을 개조한 포작선이 46척이었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제 싸울 수 있는 전선은 판옥선 뿐으로 판옥선 28척과 일본 함대 30척의 싸움이었다. 조선수군의 병력이 우세했다. 첫 전투가 시작됐다. 30척의 전선은 대형선과 중형선 그리고 소형선으로 구성돼있었다. 조선수군의 병력이 우세했다. 첫 전투가 시작됐다.

양쪽 모두 서로 싸워 본 경험이 없어 긴장했다. 먼저 일본수군의 선봉 6척이 다가왔다. 일본수군을 포위하면서 조선수군의 전선에서 일제히 총통을 발사했다. 일본 군선의 뱃머리가 길었고 파괴력이 있었다. 일본 군선에 구멍이 나자 일본수군들은 흔들렸다. 총통은 어수선한 일본수군들 위에 다시 떨어졌다. 혼돈의 아수라장이 됐다.

이어서 조선수군의 화살이 날아갔고 일본수군에서는 조총이 날아왔다. 화살보다 조총의 사거리가 길었지만 일단 총통으로 기선제압을 한 조선수군의 사기가 올라갔다. 전선과 전선이 우지끈하며 부딪히자 판재가 약한 일본 전선은 부서졌다.

일본수군의 전선은 총통에 맞아 구멍이 뚫리며 불이 붙었고 일본수군은 조선수군의 기세에 밀리기 시작했다. 일단 기울기 시작한 전세는 뒤집을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갔다. 일본수군은 군선이 파괴되고 화살에 맞은 자는 죽고, 전선에 불이 붙자 바다로 뛰어내려 육지로 도망하는 자가 많았다. 조선수군을 이끄는 이순신의 함대는 대형선 13척, 중선 6척, 소선 2척 등 모두 26척을 바다에 수장시켰다.

조선군과 일본수군의 첫 해전에서 이순신은 승리했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승리였다.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었고 자신감과 함께 일본 함대의 약점과 공격방법을 알 수 있었다. 이순신의 함대가 서전(緖戰·전쟁이나 시합의 첫 번째 싸움)을 승리로 장식한 5월7일은 공교롭게도 조선의 왕 선조가 한성을 버리고 평양에 도착한 날이었다.

■ 합포해전과 적진포해전

첫 출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의 함대는 다시 동진을 계속했다. 이미 경상도 땅은 일본수군 지역이었다. 언제 어디서 적선(賊船)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육지는 이미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적의 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승리를 만끽한 이순신의 함대는 거제도 북단의 영등포까지 가서 정박할 예정이었다. 그때 앞서 향해하던 척후장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일본 군선 5척이 지나가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잠시 긴장감이 돌았지만 승리의 맛을 본 조선수군은 당당하면서도 자신감이 솟았다.

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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