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5·18 정신' 수렴과 2018년 지방선거 시 개헌 발언을 계기로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개헌 논의가 다시 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야권은 일제히 개헌 논의를 재개하자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일단 취임 초기 대통령이 개헌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은 의미 있는 일로 평가된다. 개헌은 국가 백년대계 국정운영시스템을 바꾸는 일이다. 개헌을 통해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 다수당과 소수당이 대화와 소통을 통해 분권과 협치를 제도화하는 틀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 정치권에선 개헌 논의의 '주체'를 놓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청와대가 주도하자는 것은 아니다고, 국회에서 의견 조율이 되지 않으면 정부가 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우리 헌법상 대통령도 개헌 발의권이 있으나 국회 개헌특위의 논의 결과가 많은 점을 감안하고,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 내 개헌특위를 다시 만들지 말고 국회 개헌특위를 중심으로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여야 입장을 볼 때 지금은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인 만큼 개헌 논의에 국력을 집중하는 건 적절하지 않고, 내년 지방선거까지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국회 개헌특위에서 그동안 논의한 성과를 이어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과제는 시기와 권력구조, 선거구제, 지방분권 등 산적해 있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할 때 국회 개헌특위가 차분하게 여론을 수렴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시점 개헌론이 힘을 얻는 배경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가 곧 대통령 중심제라는 ‘낡은 제도’의 실패라는 논리가 크게 작용되고 있다. 물론 박 대통령 사례가 아니더라도, 현 시대와 미래상을 담지 못하는 헌법은 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모든 일을 다 처리하는 만기친람식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너무 크다는 것은 수 없이 입증된 바 있다. 오죽하면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 소추 인용 결정 시 안창호 헌법재판관이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제왕적 대통령제가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을 낳았다”며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은 분권과 협치,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로 나아갈 것을 명령하고 있다”고 밝혔겠는가.

‘정권 견제’를 위해 만들어진 헌법 아래에서 대결의 정치로 30년을 보내는 동안 한국은 저성장·양극화, 저출산·고령화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 단임에서 연임으로 원 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5년)와 국회의원 임기(4년)가 다르기에 불규칙하게 대선, 총선이 치러지는 ‘이격 현상’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개헌이 필요하다. 임기를 같게 만든 뒤 대선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고 총선을 그 사이에 배치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해야 잦은 선거로 인한 고비용 정치와 정치적 불안정을 막고 적절한 수준으로 권력을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정치는 대통령선거를 치른 다음 날부터 다시 차기 대선이 시작되는 정치체제로 인해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구도가 일상이 됐다. 국가적 정책현안을 함께 토론하고 책임지는 정치는 실종됐기에 정치 회복과 민생을 위해서도 개헌 추진의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대선 공약이든, 대선 후 일정 기간에 하든 개헌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개헌에 당리당략을 버리고 대승적으로 지혜를 모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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