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윤홍 시사칼럼니스트

‘일자리 대통령’을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문 대통령이 취임 1호 업무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고용시장 지표가 최악의 수준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해진 것이다.  

무엇보다 청년실업자의 증가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실업률은 11.2%로 1999년 4월 통계 작성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청년 실업자 수는 5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실업자 114만명의 절반에 육박한다. 한창 취업시장을 두드릴 나이인 20~29세로 대상을 좁혀보면 실업자 수는 47만5000명, 실업률은 11.3%에 달했다.

청년실업자의 증가는 연초 기업들이 국정혼란과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에 한껏 몸을 움츠리며 고용규모를 줄인 것이 주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여기에 ‘질 좋은 일자리’로 여겨지는 제조업이 산업 구조조정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10개월 연속 취업자수가 감소한 것도 큰 이유다. 또하나 자영업자 증가 추세도 ‘J노믹스’로 일컬어지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크다. 지난 4월 자영업자 수는 565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서만 20만명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자영업자 증가를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지만, 최근 추세는 상황이 다르다. 취업시장 진입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창업하는 자영업자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을 고용할 여유도 없는 1인 자영업자 증가가 이를 방증한다. 지난 4월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수는 409만명으로 전달에 비해 6만명 가량 늘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연속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이들 중 다수는 음식, 서비스, 도소매업 등 경쟁이 치열한 업종에서

‘손쉬운 창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창업 이후 생존율도 대체로 저조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년실업자와 자영업자의 증가는 ‘소득 불안정’에 따른 내수소비 침체로 이어진다. 완만한 회복국면의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셈이다.문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일자리 문제 해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내놓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등 재정투입 고용확대 정책은 자칫 국가재정에 있어 ‘밑빠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 J노믹스 요체는 ‘사람 중심의 성장경제’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경쟁국면에서 소요재원 22조원에 대해 “집권기간 동안만 고용하고 말 것이냐”는 식의 상대진영의 비판에 시달린 바 있다. 매년 인상되는 호봉 승급분과 공무원 연금 등 부담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공약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성장경제’인데 선뜻 알아듣기가 어렵다. 낙수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기업 주도의 성장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해 일자리와 소득이 주도하는 성장을 이끌어 내겠다는 게 ‘J노믹스’의 요체다. 

과거 정부에서 기업 성장의 혜택이 가계로 흘러가는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기업에 사회적 자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경제 정책을 운용했지만, 한계가 드러났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이에 따라 J노믹스는 정부가 사람에게 투자해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전임 대통령들과 근본부터 다른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생소하면서도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그러나 경제정책의 중심 철학은 바꾸더라도 세부적인 방안까지 전임자들의 것을 깡그리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창조경제’가 ‘녹색성장’의 흔적을 없앴듯이 ‘J노믹스’는 ‘창조경제’의 후속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도 나름의 이론적 바탕이 있었다. 실패했다면 반면교사로 삼고 성공한 점도 있다면 계승하는 게 바람직하다. 단점은 버리고 장점은 취하는 ‘사단취장’(捨短取長)이다. 

고용 증대와 복지 확대가 성장을 이끄는 선순환 구조는 외국 사례를 통한 이론적 토대가 있다.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 그들이 소비를 늘려 결국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굉음 아닌 신음’이라는 혹평도 듣지만 1500만개의 일자리를 늘린 미국 ‘오바마노믹스’와도 맥이 통한다. 분배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중장기적 관점의 신성장 동력 확보, 그를 위한 경제의 중요한 두 축인 정부와 기업의 역할도 무시할 수는 없다. 

닭과 달걀의 관계와 같은 성장과 분배는 어느 것이 먼저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지금까지의 문제는 성장을 했더라도 그 과실이 저소득 서민층에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빈민층이 1000만명에 이르는 암울한 현실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타개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래도 ‘J노믹스’에는 잘못된 경제의 흐름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 자못 기대가 크다.

■ 재벌개혁, 일자리 창출과 연계를

역대 정부들이 규제개혁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하나같이 실패한 것은 바로 기득권자들의 저항을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업별 독과점 기업들과 정규직 노조가 대표적이다. 기득권자들의 표(票)를 의식하는 국회가 움직여 주지 않아서다. 문 대통령은 개혁을 위해 협력과 소통의 정치를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기득권자 및 국회와 끊임없이 대화하되, 안 되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해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재벌개혁을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는 실용적 정책도 써 볼 만하다. 재벌이 민감해하는 소유·지배구조 문제는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대신 가시적인 청년 채용을 약속받는 방식이다. 물론 일감 몰아주기나 기업 돈을 빼돌리는 등 범죄 행위에 대해선 엄단하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법인세 인상과 관련해서도 일자리 늘리기를 실행한 기업에 대해선 예외적으로 기존 세율을 적용해 주면 어떨까.

이젠 재벌도 스스로 달라진 모습을 보일 때가 됐다.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외국인 주주의 환심을 사는 일엔 열심이면서 국내 일자리엔 왜 그리 인색하냐는 불만이다. 국민이 박수를 치면 정부도 국회도 재벌 때리기를 멈추기 힘들다. 국내 투자에 적극 나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풍족하게 공급하면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재벌을 욕하면서도 대학을 졸업한 자식이 재벌 회사에 취직하길 바라는 게 국민의 바람이다. 일자리 늘리는 게 눈으로 보이면 국민이 앞장서 “재벌 때리기 그만 좀 하라”고 막아 주지 않을까.

문윤홍 시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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