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기간 내건 공약이라도 현실성이 떨어지면 빠른 시일 내 접는 게 좋다. 감당 못할 공약은 당선 후 후유증만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 같은 큰 선거에선 정권 획득에 급급한 나머지 앞뒤 재지 않고 쏟아낸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공약들이 선거에 이겨도 정권의 발목을 잡곤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출범한 역대 정부마다 예외 없이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냈다. 그런 공약들은 집권 후 감당 못할 부담을 떠안겨 정권의 실패위험을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 시킨 더불어민주당과 새 정부 또한 선거공약을 점검하고 정책 추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온당하다고 본다. 포퓰리즘 대선공약을 빠짐없이 걸러내 국정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 공약 가운데 재검토 운선순위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공약 이행 비용으로 5년간 21조원을 제시했다. 공무원 17만명을 5년간 순차적으로 뽑는다는 사실을 가정한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창출되는 나머지 64만개 일자리 비용으로는 4조원만 책정됐다. 세금이 직접 투입되는 것만 넣고 공공기관이 부담하는 비용을 제외해 소요 재원을 의도적으로 줄였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문재인정부가 연차적으로 공공 일자리를 충원한다고 하더라도 다음 정부는 81만명의 인건비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임금 인상분까지 고려한다면 어림잡아 매년 40조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추산이 나온다. 인건비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공무원연금 등의 재원 고갈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의 천문학적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해 세금과 공공요금 인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공공기관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방만경영이 심화되는 구조다.

문 대통령의 제1 국정과제는 일자리 만들기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해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일자리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보다. 하지만 일자리 문제가 위중할지라도 쉽고 빠른 길을 택해선 안 된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야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공약은 재삼재사 검토해야 한다. 경제 분야는 특히 그렇다. 사실 대통령 후보자들의 공약이 실현 가능한지 검토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전체적인 방향이 올바른지 따져보면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 경제 관련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려면 크게 경제 성장과 소득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만 살펴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 성장과 소득 분배는 서로 모순처럼 보이지만,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항목이다.

대부분 이 두 항목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찾는다면 경제성장과 소득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유념할 일은 어렵더라도 일자리는 정공법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사실의 인식이다. 임기응변식으로 일자리 상황판만 채우고자 한다면 나라 경제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떠안게 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든 게 꼬이는 법이다. 차제에 거품이 끼어 있는 포퓰리즘 대선공약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버릴 건 버려야 한다. 신속과단성이 요청된다. 아무리 급해도 지킬 수 없는 ‘공약(空約)’은 버려야 한다. 물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절차는 밟는 게 온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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