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대기업 중심 낙수경제 더 이상 작동안돼
새 정부, 중소·벤처기업 중심 일자리 창출 기대
기존 경제 패러다임 대체하는 전 정부적 노력 필요

▲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창출의 원천으로 중소·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스타트업 청년채용 페스티벌'을 찾은 구직자들이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정책 운용의 중심은 경제성장률 제고였다.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률이 올라가면 기업의 투자가 늘고, 고용이 늘어 근로자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늘어 경제 규모가 커지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이런 수출주도 경제성장의 중심이 된 대기업에 대해서는 각종 세제·금융 지원이 집중되는 '선성장·후분배'의 불균형 발전전략에 따라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세계가 놀랄 정도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됐다.

■과거의 성장엔진 역할을 하지 못하는 대기업 중심 경제

하지만 보호된 국내 시장에서 덩치를 키워 세계무대에서 뛸 수 있는 체력을 확보한 대기업들이 더 싼 임금의 노동력과 시장을 찾아서 해외로 나가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연결고리는 약화됐고(de-coupling) 대기업의 1차 협력회사가 대형화하는 동안 2·3차 협력업체에게 주어지는 성장의 과실은 적어지게 됐다(홍운선, '낙수효과에 관한 통계 분석이 주는 시사점'). 대기업의 성장이 납품 중소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더해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과거의 풍부했던 저임금 노동력이 고갈되고 주력 산업도 자본집약형으로 변모하면서 기업들이 사람 대신에 대규모 자본 투자를 통한 공장 자동화에 주력하면서 글로벌 대기업들은 해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국민경제의 주름은 쉽게 펴지지 않는 양극화 현상이 빚어졌다. 경제가 꾸준히 성장은 하고 있지만 고용은 늘어나지 않는 '고용없는 성장'의 덫에 빠진 것이다.

■문 대통령, 일자리 창출의 원천으로 중소·벤처 기업 주목

이처럼 대기업이 잘 된다고 해서 고용이 증진되지 않으면서 이들 대신에 새로운 고용의 창출 동력원으로 중소기업·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인식해서 후보시절 일자리 공약을 정리한 대선 캠프 일자리위원회 최종 보고서에서 "상위 20대 대기업의 총고용자수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스타트업이 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주도하고 있고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의 등장과 성장은 빨라지는 추세다"며 "일자리 창출의 원천인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에 새 정부에서는 기존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확대 개편함으로써 이전 대기업 중심 산업자원부에서 정책 우선순위가 밀렸던 중소기업 정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단순히 기구와 예산의 확대·증가뿐만 아니라 각 부서에 산재돼 있는 기능의 통합과 집중에 의한 실효성있는 중소기업 정책 실현을 주문하고 있다. 산자부의 기술과 수출시장 정책,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업·벤처 정책, 금융위원회의 기업금융·창업투자 기능을 일원화함으로써 정책의 혼선을 방지하고 정책자금 집행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국정 제일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담당하는 일자리 수석에 지난 이명박정부 시절 지식경제부 차관을 역임한 안현호 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을 임명했다. 안 수석은 과거 참여정부 시절에는 산업기술정책 실무관료로서 바이오와 차세대로봇, 디지털컨버전스, 차세대의료기기, 나노·생산·청정·지식서비스기반 기술 등 15대 차세대 전략기술 육성계획과 부품·소재산업 육성 정책을 수립한 경험이 있다. 과거 직무 이력을 볼 때 신성장동력산업과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중소기업정책 뿐만 아니라 전정부적 전방위 노력 필요

오늘날의 대기업·중소기업 격차가 단순히 중소기업 정책의 부재 또는 경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60년 넘는 대기업 중심 경제개발정책에 비롯된 만큼 중소기업정책 더 나아가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신설되는 중소벤처기업부 뿐만 아니라 전 정부적인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대기업의 투자와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서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제대로 단속하지 않다 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에 교섭력 격차가 심화됐고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혁신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중소기업 영업이익 실현의 저조, 급여의 하락, 구직희망자의 취직 기피, 생산성 하락 등의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청년구직자들이 대학 입학과 동시에 급여와 근로조건이 좋은 대기업 취직을 위해서 이른바 '스펙쌓기' 경쟁을 하고 졸업 후에는 몇년간 취업재수를 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인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취직이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전 정부적인 차원의 전방위적인 협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점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을 만들고 창업 열풍을 일으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면 기존 분야와 업체와의 선의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며 "이때 공정위가 입을 닫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한 점에서도 드러난다.

비단 공정위뿐만 아니라 국세청도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면제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기업수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부조달시장에서 공정거래기업과 불공정거래기업간의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사회 전반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는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전문가 견해가 많다.

■만병통치약 하나로 단박에 해결하려는 조급성 버려야

조영삼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소기업 정책은 만병통치약 하나로 단박에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며 "때로는 응급처방을 쓸 수도 있지만 여러 상황별 다양한 정책수단을 적기에 적절히 활용해야 중소기업 진흥, 일자리 창출의 궁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