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 변호사

회사정리계획 인가에 실패했더라도
희망퇴직자 위로금조건은 이행해야


A회사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받으면서,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자에 대해서는 “회사정리계획이 인가되면 인가결정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평균임금의 3개월분을 퇴직위로금으로 지급하겠다”라고 했다. 직원 B 등은 희망퇴직을 신청해 퇴직했다. 그런데 위 회사는 회사정리절차가 폐시돼 정리계획 인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에 A회사는 정리계획을 인가받지 못했으므로 퇴직위로금을 줄 수 없다고 하고 있다. B가 퇴직위로금을 받을 수 없겠는가.

우리는 “나한테 100만원만 빌려줘라, 내가 거래처로부터 돈을 받으면 네 돈을 갚겠다”, “복권에 당첨되면 너한테도 100만원을 주겠다”는 식의 의사표시를 하곤 한다. 여기에서 전자의 ‘거래처로부터 돈을 받으면’과 후자의 ‘복권에 당첨되면’을 주된 의사표시에 부수되는 부관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에 있어서 차용자는 ‘거래처로부터 돈을 받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만 차용금을 갚겠다는 의사는 아닐 것이다. 돈을 갚을 의무는 차용자가 거래처로부터 돈을 받던지 혹은 못 받던지 간에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경우에는 채무의 이행기를 정한 ‘기한’으로 해석해 차용자가 거래처로부터 돈을 받거나, 혹은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이 확정된 때에 이행기가 도래한 것으로 본다. 후자의 경우에는 복권에 당첨이 돼야 돈을 주겠다는 의사표시로 볼 것이다. 즉, 조건이다. 즉, 의사표시자가 복권에 당첨되지 못한 경우에는 돈을 줄 의무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관부 법률행위에서 당해 부관을 기한으로 볼 것인지, 혹은 조건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 당해 부관이 불성취 됐을 경우에 주된 채무를 이행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달리 판단될 수 있다.

본 사안을 보자. A회사가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회사정리계획 인가결정일로부터 1개월 내에 퇴직위로금을 지급하겠다’라고 했는데, 이를 조건부 법률행위로 본다면 조건 불성취로 인해 회사는 직원에게 퇴직위로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할 것이고, 기한으로 본다면 회사는 직원에게 퇴직위로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위 경우에서, “부관이 붙은 법률행위에 있어서 부관에 표시된 사실이 발생하지 아니하면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한 경우에는 조건으로 봐야 하고, 표시된 사실이 발생은 물론이고 발생하지 않을 때에도 그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한 경우에는 표시된 사실의 발생 여부가 확정되는 것을 불확정기한으로 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미 부담하고 있는 채무의 변제에 관해 일정한 사실이 부관으로 붙여진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것은 변제기를 유예한 것으로서 그 사실이 발생한 때 또는 발생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확정된 때에 기한이 도래한다”라며 회사는 퇴직직원에게 퇴직위로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희망퇴직자와 회사의 의사표시의 해석상 위 대법원 판례는 지극히 정당한 판단이라고 할 것이다. 위 사례에서 회사가 자기의 사정으로 퇴직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면서 희망퇴직을 받아서 직원을 퇴직시킨 후에 회사 정리절차가 인가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퇴직위로금의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쉽게 부당하다고 판단될 수 있을 것이다. 법은 사회적 상식의 총합이다.

이주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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