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Ⅶ 제2차 사천해전

이순신의 두 번째 전투는 사천해전이었다. 여기서 이순신이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시킨 거북선이 등장한다. 그동안 시험 진수만 했던 거북선을 실전에 배치해서 전투에 사용하도록 했다. 거북선의 크기는 기본적으로 판옥선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웅장하고 위엄이 있다. 10미터가 넘는 대형 거북모양을 한 거북선이 가진 화력은 대단했다. 전후좌우로 6문의 총통을 쏠 수 있었고 격군이 젓는 노는 좌우에 각 9개씩으로 총18개였다.

한 번도 일본수군과 전투를 치러 본 적이 없었던 이순신의 함대가 전과를 올린 이후 두 번째 출전이었다. 첫 번째 승리에서 얻은 자신감이 군사들에게는 남아 있었다. 어둠의 적막감과 함께 일본수군의 총통공격과 조총과 화살이 오가는 전장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싸울 수 있는 용기와 담력이 필요했다.

1차 일본수군과의 전투에서 적선28척을 깨트리거나 수장시켰다.
5월27일 “적선 10여척이 사천과 곤양 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함대를 노량으로 이동했다”는 원균의 급보였다.

이순신의 함대는 6월3일까지 기다려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합류해 출전하기로 했던 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뱃머리를 동쪽으로 돌렸다. 급한 상황이 발생해서 먼저 떠나니 전라우수사 이억기는 뒤따라와 달라는 내용을 남겨놓고 진영을 떠나 5월29일 노량의 원균과 합류했다.

바다는 늘 긴장되는 곳이었다. 전장은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죽는 자 없이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승과 패는 빛과 그림자 같은 현상이었다. 죽여야 승리할 수 있고 함대를 격침 시켜야 이기는 것이다. 한쪽은 살고 한쪽은 죽는 살벌한 전쟁터에서 어느 편이고 어둡고 침묵하는 바다는 두려웠지만 이순신은 단호했다. 물러섬이 없었고 늘 진두에서 지휘했다.

이순신의 함대는 사천을 향하고 있었다. 멀리 일본수군의 군선이 보였다. 이순신은 천천히 추격할 것을 명령하고 적의 동태를 면밀히 살폈다. 적의 함대는 총 13척으로 사천 선창(지금의 경남 사천군 읍남면 선진리)이 근거지였다.

사천 선창은 구릉의 단면에 위치해 일본수군이 상대적으로 고지대에서 사격이 가능했다. 또한 수로가 좁아 조선수군의 주력함선인 판옥선의 진출입이 원활하지 않은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이순신은 먼저 작은 협선을 진입시켜 공격을 가하면서 밀려서 후퇴하는 척, 적들을 유인하려 했으나 적들은 추격하지 않고 능선에서 조총으로 공격을 해왔다. 적병의 규모는 대략 200여명 됐다. 마침 바닷물이 밀물로 바뀌어 지고 있었다. 바닷물이 차오르자 판옥선이 포구 쪽으로 이동시키면서 처음으로 거북선을 투입시켰다.

거북선의 위력은 엄청났다. 지붕이 있어 적의 조총공격을 피할수 있었고 화공에도 강한 면을 보였다. 접근전에서도 엄청난 위력을 보여줬다. 머리로 적의 군선을 들이받자 적의 군선이 힘없이 부서졌다. 거북선의 투입으로 기선을 장악한 조선수군은 함포와 불화살로 적의 군선을 불사르며 적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순신은 전투를 독려하다 적의 탄환이 어깨를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지만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전투를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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