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인사(人事) 검증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겠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지 닷새 만에 자진사퇴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고위직 인사검증의 부실한 체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안 후보자의 사퇴는 27살이던 1975년 교제하던 여성의 도장을 위조해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가 이듬해 법원에서 혼인 무효 판결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게 결정적이었다.

몰래 결혼의 경우 2006년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되던 때 처음 거론됐으나 이번엔 소홀히 다뤄졌다는 지적이 있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아들이 2014년 고교 재학 시절 여학생과의 불미스러운 일로 퇴학 처분을 받자 교장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문제는 인사 논란이 안 후보자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미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등을 둘러싼 의혹이 연일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논문 표절, 음주운전, 고액 자문료 논란에 거짓 해명 의혹까지 겹치면서 여권 내부에서도 “이 가운데 한두 명은 28일쯤 예정된 국회 인사청문회도 치르지 못하고 중도 낙마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실정이 이러니 부실한 인사 검증이 정치권은 물론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야당이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과 조국 민정수석을 국회 운영위에 출석시켜 책임 소재를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는 바 무리한 주장은 아닌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조각을 해야 했던 현실적 한계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지난 정부들에 비해 진일보하지 않은 ‘인사 참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야당을 향해 정치 게임에 몰두한다고 공격했지만 자신의 과거 행동부터 돌아봐야 한다. 부실 검증을 이유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성토한 게 지금의 여당임을 돌아봐야 한다. 정치 공방을 떠나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청와대의 책임은 피하기 어렵다. 후보 인선을 놓고 총체적인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청와대가 어물쩍 넘어간다면 앞으로 적폐 청산이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도 말아야 한다. 청와대가 제도적 측면에서도 하루빨리 인사 추천 시스템을 정비해 체계적인 인선과 검증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주장하는 ‘나라다운 나라’도 결국 첫 출발이 인사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부터 확실히 재점검해 다시는 이 같은 낙마 사례가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공식 임명했다. 위장전입 의혹 등이 제기됐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있는 데다 전직 외교부 장관 10명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강 후보자 지지 성명을 낸 데서 보듯 국민 여론도 찬성이 훨씬 높다는 점을 감안해 단행했다고 본다. 사리가 이렇다면 야당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강 외교장관 임명에 따른 ‘투쟁’만 내세울 게 아니라, 추후 인사 청문 대상 후보자에 대한 합리적 검증 및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 대안 제시에 노력하길 바란다. 문 대통령도 최근 일련의 인사 부실에 대해 직접 유감을 표하고 야당의 양해를 구함으로써 협치(協治)의 명분을 제시, 경제·안보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호의 활로를 여는 데 힘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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