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Ⅱ- Ⅶ 제2차 사천해전

사기가 떨어진 일본함대를 이순신 함대가 포위하며 공격해 들어갔다. 이번 전투에는 처음 출전한 중위장(中衛將) 권준(權晙)이 활을 겨냥했다. 일본수군의 장수가 목표였다. 활시위를 놓자 일본장수의 몸에 그대로 꽂혔다. 일본장수가 쓰러지자 조선수군이 일본장수가 쓰러지는 전선을 향해 뛰어내려 적장의 목을 베었다. 일본군의 장수의 목을 베자 일본수군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일본수군의 군선21척을 부수고 수장시켜버렸다. 해전에 참가한 이순신과 원균의 통합함대라고 하지만 이순신의 역할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선조 왕에게 올린 당시 상황을 이순신이 적은 장계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6월 초하루 새벽에 경상우수사 원균이 신에게 말하기를 ‘어제 접전할 때 남겨둔 적선 2척이 도피했는지의 여부를 알아볼 겸 화살에 맞아 죽은 일본군의 목을 베겠소.’라고 했습니다. 청음에 원균은 패군한 뒤 군사 없는 장수로서 작전을 지휘할 수 없어 교전한 곳마다 화살이나 철환에 맞은 일본군을 찾아 목을 베는 일을 맡아서 하도록 했습니다. 원균은 왜적들이 육지를 경유해 멀리 도망했기 때문에 남겨 뒀던 전선을 불태우고, 죽은 적의 목을 벤 것이 3급(3명의 목)이며 나머지는 숲이 무성해 끝까지 탐색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장계로 봐 경상우수사 원균과 통합함대를 구성했지만 총괄지위는 이순신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원균은 패전한 장수로서 군선과 병력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훗날 이런 원군과의 갈등으로 조정에서 이순신과 원균의 공과(功課)에 대해 논의됐다. 자신이 겪은 상황을 다르게 전달받은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Ⅱ- Ⅷ 이순신의 통합함대 구성

이순신은 상륙해 육지에 있던 일본군을 공격할 것을 준비하던 중 탐망선(探望船)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본의 대선 20여척이 작은 배를 여럿 거느리고 거제도로부터 오고 있다”는 다급한 보고였다. 방금 공격한 일본수군보다 두 배는 되는 규모였다. 이순신 함대는 대선인 판옥선이 24척이었고 일본수군의 함대는 대선 20척이 넘는 규모라는 보고로 봐 비슷한 전력이었다. 조선수군과 일본수군의 일대 일의 대결인 셈이었다. 이순신은 육지를 포기하고 승선해 바다로 항진할 것을 명령했다.

이순신 함대를 발견한 일본 함대는 뜻밖에 도주하기 시작했다. 조선수군에 패한 일본수군들에게 조선수군의 위력이 모두 알려진 것 같았다. 일본수군은 부산 쪽으로 도피했다. 이순신 함대가 추격했으나 따라잡지 못하고 날이 저물어 진주의 창신도(昌新島, 남해군 창선면)에 정박했다. 날이 밝자 이순신 함대는 일본수군을 공격하기 위해 연안을 수색했다. 일본수군은 찿을 수가 없었다. 일대를 모두 뒤졌으나 일본수군을 발견하지 못했다. 고둔포(古屯浦,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에 정박했다.

6월 4일 날 좋은 소식이 날아왔다.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함대를 이끌고 합류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승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다. 원래는 6월 3일 합류하기로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하루 뒤인 4일 날 합류했다. 전라우수사였던 원균과의 통합함대는 4만 척의 전선을 가지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뤄진 것으로 그리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억기가 거느린 전라 좌수군은 전투능력이 있는 장병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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