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인류역사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헤겔과 같은 법철학자는 인류역사를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으로 설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正)이 그것과 반대되는 반(反)과의 갈등을 통해 정과 반이 모두 배제되고 합(合)으로 초월하며, 이 합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합 또한 모순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합’은 다시 ‘정’이 된다. 이러한 식으로 반복하다 보면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정반합 이론이다.

한편 헌법학적 관점에서 인류역사를 바라보면 ‘인권보장의 확대 역사’라 할 수 있다. 절대군주의 지배객체에 불과한 국민이 지배주체의 지위를 차지하게 됐고(제정에서 공화정으로),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 자유와 권리 역시 하나씩 그 범위를 확대해 갔으며 그것도 피를 흘려가며 쟁취해 왔다.

■ 프랑스혁명에 영향준 미국의 독립

인권보장의 역사 중 가장 획기적인 것을 들라면,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드는 것이 일반적이리라.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는 대헌장이라 하는데, 라틴어의 마그나는 great, 카르타는 chapter이다. 대헌장은 당시 존 왕이 귀족들과 만나 귀족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한 문서에 불과한 것으로, ‘국민’의 인권과는 무관한 이벤트였다. 역사상 최초라는 의미 외에는 인권에 어떠한 울림도 없다.

인류역사의 3대 혁명으로, 1776년 미국의 독립 및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꼽을 수 있다. 전2자는 절대군주를 무너뜨리거나 벗어나면서 국민국가인 공화국을 만들었기 때문이고, 후자는 주권의 주체를 국민이 아닌 ‘노동자 농민’으로 보는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한 것으로 이 지구상에서 최초의 공산국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776년 7월 4월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이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언제 독립했는지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미국의 독립선언은 미국의 독립을 넘어 ‘혁명의 완성’이기에 헌법적으로 중요하다.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가형태를 만들어 낸 혁명이자, 왕정에 대한 공화정의 선포였기 때문이다.

■ 노예해방은 美보다 英서 먼저 성공

이제껏 인류는 출생에 의해 그 지위가 정해지는 세습의 절대군주의 지배를 받아왔다. 미국의 독립과 1787년의 미합중국헌법에 의해 세계 최초로 ‘국민에 의해 만들어지는’ 대통령을 두게 됐다. 독립선언이 있은 후 약 13년 후 미국의 독립(혁명)에 자극받은 프랑스는 구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민국가를 만들었기에 그 의의가 크다. 프랑스는 군주(루이16세)를 처형하고 왕정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영국의 왕정으로부터 벗어나 공화국을 성립시킨 미국과 차이가 있지만, 혁명의 순서는 미국이 먼저이다.

우리나라 헌법교과서에서 잘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인류사에서 생략될 수 없는 가장 귀중한 인권보장은 영국의 1833년 노예해방이다. 노예해방하면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떠오르게 되는데 노예해방은 영국에서 먼저 이루어졌고, 링컨은 이를 미국에 적용 실현시킨 사람이다. 노예해방을 이끌어 낸 성공의 주인공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였다. 윌버포스는 불굴의 신념을 가지고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이었다. 그는 매우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명문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했으며 21세 때 최연소 국회의원이었으니 출세 길이 보장된 자였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영국의 가치관에 타협하지 않고 50년 넘게 인권, 특히 노예해방을 위해 헌신한 정치가이자 신앙인이었다. 그가 추진한 노예해방운동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듯이, 험난의 연속이었다. 이는 당시의 ‘지성이나 양심’들이 돈에 눈이 어두워 양심을 애써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가 추진한 노예무역폐지법안은 11번이나 좌절됐다. 하지만 12번 만인 1807년 영국하원은 ‘노예무역폐지법(The Abolition Act)’을 통과시키게 된다(11전 12기). 또한 그가 죽은 해인 1833년 영국 의회는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노예해방법’(The Emancipation Act)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윌버포스가 하나님 앞에서 뜻을 세운 지 56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후 프랑스는 1848년에, 미국은 1865년에 노예제를 폐지했다. 세상을 바꾼 사람 그러나 너무나 오랫동안 세상이 몰랐던 사람이, 윌버포스이다. 미국 독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윌버포스의 귀중한 업적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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