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협치(協治)가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오랜 경제 불황과 한반도 안보 상황의 엄중한 현실에서 국내 정치의 안정은 안팎의 어려움을 여는 활로가 되기에 그렇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정권 초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 야당 협조가 필수적이다. 물론 장관 인사청문회나 아들 준용 씨 특채 의혹 등을 둘러싼 야당의 반발과는 별도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80%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현실은 ‘냉동 정국’이다. 야당이 반대하는 송영무(국방부)·조대엽(고용노동부) 두 장관 후보자 문제에 갇혀 정국이 꼼짝도 못 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어떻게 해서든 야당을 설득해 임명 절차를 밟으려는 것 같다. 사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두 후보자를 공식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인사청문 보고서의 2차 채택 시한이 지나 임명에 필요한 절차는 모두 거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두 후보자의 임명을 며칠 늦추기로 했다고 한다.

■인사청문·추경 등 여야 큰 인식차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참모진이 적극 건의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대로 임명을 강행하면 야당과 대화 채널이 완전히 막혀 국정 운영이 더 꼬일 것을 우려한 듯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야당은 더 강경하게 나왔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야 3당은 임명 연기 자체를 '꼼수 정치'로 규정하고, '부적격'으로 결론 난 송·조 두 후보자 임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야당은 두 후보 중 한 명만 임명하면 받을 만하냐는 여당의 막후 절충 타진도 원칙 없는 흥정으로 일축했다. 한마디로 대화가 안 되는 상황인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임명을 연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당장 '명분 쌓기'라는 말이 따라 나왔다. 두 후보자 모두 임명하는 것이 문 대통령 생각이고 결국 야당이 반대해도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성급히 부정적 예단을 갖고 대화 채널을 아예 닫는 것은 명분 훼손을 자초할 수 있다. 얘기를 더 들어보지도 않고 문 대통령의 임명 연기를 꼼수니, 술수니 하며 차갑게 내친 야당의 대응은 그런 점에서 아쉽다.

되돌아보면 이렇게 정국이 꽉 막한 근인은 국회 인사청문 절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여야의 기본 입장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여야의 상황 인식과 관점이 다른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시각차를 대화와 타협으로 좁혀 가며 최적의 절충안을 찾아내는 게 정치의 본령일 것이다.

끝까지 자기주장만 고집하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하면 정치의 존재 이유도 찾기 어렵다. 비공식적인 것일 테지만 두 후보자 중 한 명만 임명하는 협상 카드가 야당에 전달된 듯하다. 여당이라고 그런 타협안을 내놓는 것이 마땅할 리 없다. 야당이 전후 사정을 충실히 살피지 않고 강경일변도로 나가면 원치 않는 결과를 맞을지도 모른다. 바로 여당의 명분을 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진정성 지니고 소통하는 게 중요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다른 일은 몰라도 야당이 추가경정예산안과 정부조직 개편을 인사 문제나 다른 정치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른바 '일자리 추경안'과 정부조직개편안 처리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주요 국정 현안들이 장관 인사청문 대치에 붙잡혀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새 정부라면 그에 상응해 국민의 도덕성 요구를 살필 필요도 있다. 언급한 새 인사기준 이상으로 향후 인사들에 대한 철두철미한 검증에 터 잡아 자격미달 후보들을 걸러내길 바란다. 야당을 상대로 더욱 진정성을 갖고 소통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대통령과 함께 국사를 논의할 국무위원들이 도덕적으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지, 직무를 수행할 자질과 능력을 갖췄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하지만 검증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확실한 도덕적 흠결이나 자질 부족 등을 검증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야당이 사소한 꼬투리 잡기 등으로 국정 발목 잡기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상식과 합리성에 바탕한 고위공직자 청문회 문화가 요청된다. 한국당·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 3당은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인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국정에 협력하는 게 온당할 것이다. 권혁미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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