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성패는 가계부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에 버금갈 정도인 1천400조에 육박하고 있다. 문제는 증가세가 너무 가파르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가계부채는 724조원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가격에 의존한 경기 살리기에 나서면서 2014년 8월 대출규제를 완화하자 증가세를 확대하더니 2015년 10.9%(117조8천억원), 2016년 11.7%(141조2천억원) 등 연이은 폭증세를 기록했다. 2년간 증가 규모는 무려 259조원에 달한다.

폭증한 가계부채, 곧 저금리 아래에서 시중에 풀린 돈들은 부동산 투기 등에 투입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이르면 22일부터 서울과 과천, 세종 등 투기지구와 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일괄적으로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40%로 적용한다.

투기지역 내에서는 세대당 1건의 주택담보대출만 받을 수 있게 되며 다주택자는 전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LTV·DTI가 10%포인트씩 낮아진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내용의 은행·보험·저축은행·여전사 등 업권별 감독규정 개정안이 21일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통과해 임시금융위 의결을 거쳐 22∼23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가 우리 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폭증세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걱정은 한계가구다. 한계가구는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고, 원리금 상환액이 가처분소득의 40%를 넘는 집들이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 저소득층, 자영업자, 고령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한계가구가 무너지면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예컨대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2013∼2015년 3년간 연평균 8.2% 증가했으나 올해 증가율은 13%대(상반기 기준)로 훌쩍 뛰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비은행 예금취급기관 대출 잔액은 지난 8월 현재 274조938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5조5000억원 증가했다. 경기둔화가 장기화하고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생활자금 대출 수요가 많아진 것이 제2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세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선 주택담보대출 외에도 생활비 명목의 생계형 대출, 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의 전월세자금 대출, 자영업자들의 사업자금 대출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에만 초점을 맞춰 부동산 시장에만 손을 대니, 당국은 가계부채가 제대로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제2금융권 대출' 등만 불리는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부 정책도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서민들의 경우 주택 구입 목적의 대출 비중은 사실상 크지 않다. 오히려 생계형대출이나 사업자금, 전월세자금 대출이 많다. 다주택자 등 투기세력에 내리는 은행 대출 억제책을 제대로 된 진단 없이 잘못된 처방만 내려 문제만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새로운 미시적인 진단과 제대로 된 처방을 모색하길 바란다.

가계부채는 지금과 같은 폭증세를 이어간다면 경제성장과 소비를 제약해 위기를 부르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제대로 관리된다면 경제성장과 소비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시장흐름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 현실에 맞는 대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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