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복잡한 결정’ 의미 군용어 'VUCA'
4차산업시대 정신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기업들 속도전… 분야간 벽까지 허물어
"2050년 일자리 절반가량 사라질 것…기본소득제 도입으로 빈부차 해소"

▲ 박경식 미래전략정책연구원장.

국내 1호 미래학자인 박경식 미래정책연구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는 의지와 관련한 최대 과제로 '기업의 생존문제'와 '일자리 문제'를 꼽았다. 

도시가 스마트화되고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3D프린터가 발달하면서 국민 삶의 질은 향상될 것이 분명하겠지만 로봇들로 일자리가 대체될 경우 그나마 취업이 힘든 시기 사람들은 실직의 고통을 받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에 '일간투데이'는 미래학(學)에서 선두주자라고 불리는 박경식 원장과 최근 강남 JW메리어트호텔 로비에서 만나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경우 국민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얘기를 들어봤다. 

박 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직업 등 모든 분야의 시스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ICT 부문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생각의 창을 더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편집자주>


[일간투데이 홍보영 기자] "오늘의 아이를 어제의 방법으로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를 훔치는 것이다" 미국의 교육개혁가 존 듀이의 이 말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업을 넘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쳐 연쇄적인 변화의 층돌이 일어나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앞에 서 있다.


더 이상 이전의 방법을 고수해서는 다가올 변화의 속도에 보조를 맞출 수가 없다.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으며, 눈 깜짝할 새 더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미래학자들은 예측한다. 지난해 다보스 기조연설에서 클라우드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모든 시스템이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며, 훨씬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 뷰카(VUCA)… 4차 산업혁명의 태동

4차 산업혁명이 명시적으로 거론된 것은 클라우드 슈밥 회장에 의해서다. 하지만 혹자는 4차 산업혁명의 실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기술적 변화를 일상에서 감지하기는 하지만, 미래학자들의 예견처럼 파괴적인 혁신과 변화가 우리 사회에 도래하겠냐는 반문이다,

이에 박 원장은 "클라우드 슈밥 회장이 다보스포럼에서 주창하면서 세계적인 이슈가 됐지만, 사실 4차 산업혁명은 어제 오늘 거론된 일은 아니다"며 1990년대 미국 육군대학원에서 군사용어로 처음 사용한 뷰카(VUCA)를 언급했다.

뷰카(VUCA)란 불안정하고(Volatile), 불확실하고(Uncertain), 복잡하고(Complex), 애매한(Ambiguous) 복잡성의 시대를 의미한다. 이러한 시대에 어떤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뷰카 시대의 특성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신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뷰카 시대에 글로벌 기업이 탄생했다. 글로벌 기업이란 말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국가 간 경계를 초월한 기업의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사람들 삶에 깊숙이 파고든 '브랜드'를 통해 알 수 있다. 기업은 국내기업, 국제기업, 다국적기업을 지나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오늘날 기업의 변화는 지리적 확장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은 시간을 앞지르고자 한다. 말하자면 기업의 경쟁력은 시간과의 투쟁, 곧 속도전에 달려있다. 이는 분야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오는 변화의 핵심에는 광속으로 변화하는 기술이 있다. 박 원장은 현재 구글 소속의 세계 최고 인공지능 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기하급수’에 대해 설명했다. <박스참조>

◇ 레이 커즈와일의 '기하급수'란?
레이 커즈와일은 해마다 미래기술 변화를 예측했는데 86%의 적중률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미국은 60억 달러의 정부 예산을 들여 게놈(DNA) 분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지 7년이 지나 프로젝트 완성률은 고작 1% 정도였고, 예산의 절반이 소요된 터였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프로젝트는 승산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레이 커즈와일은 7년만 더 기다리면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7년 뒤 실제로 프로젝트는 성공한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바이오 시장을 가지고 있다. 7년간 1%의 완성률밖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나머지 7년간 100%에 도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레이 커즈와일은 매해 2배씩 기술이 발전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이것이 기하급수다.

 

■ 기하급수적 발달에 기업은 '속도와의 전쟁'

기하급수적으로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기업은 속도와의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누가 더 멀리 내다보고 민첩하게 반응하느냐에 생존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분야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을 초래한다.

그가 예를 든 기업은 제조기업 GE. 1893년에 세워진 GE의 주력 사업은 송전, 전기모터, 항공장비, 가스 등이다. 제조업체로 사업을 시작한 기업이지만 현재 수입의 75%가 소프트웨어 판매로 얻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GE가 제작한 항공기 엔진, 화력발전소의 가스터빈 등에 센서를 부착하고 모니터 진단 센터를 통해 상태를 확인한다. 제품 전반에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를 결합한 것이다.

2008년 브라이언 체스키와 조 게비아가 창설한 에어비앤비는 오프라인 호텔에 온라인 기술을 적용해 일반 가정집을 호텔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에 한 곳의 호텔도 소유하지 않았지만 가장 성업 중인 숙박 서비스 업체다.

박 원장은 브랜드 전략회사 인터브랜드의 말을 빌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경쟁력은 성장을 통한 파괴적 혁신을 어떻게 이뤄 나가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정부와 기업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응•융합•공유•협업 등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우리정부와 기업이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인정하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 산업, 시장, 기술 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려야 한다. 이제는 각 기술과 산업이 융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박 원장은 기업의 생존전략으로 '협업(Collaboration)'이 중요하다고 피력하며, 핀란드 교육을 예로 들었다. 필란드는 법 개정을 통해 2020년부터 학교에서 4C를 가르칠 것이라고 선언했다. 4C는 소통(Communication), 창의력(Creativity), 비판력(Critical thinking), 협업(Collaboration)을 가리킨다.

그는 "지난해 CES(소비자 가전쇼)에서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과 IT 기업들의 합종연회를 볼 수 있었다"며 "글로벌 기업조차 협업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박 원장이 꼽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아젠다는 '일자리 문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규모 실직이 일어날 것이란 우려는 이미 우리 사회에 팽배하다. 올해 초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트레이더 600명 중 2명만 남기고 해고하거나 이직시켰다는 기사가 나와 충격을 줬다. 인간이 하던 일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옥스퍼드대의 마틴스쿨(Martin School)은 "20년 내에 현재 직업의 47% 정도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조너선 워첼 매긴지글로벌 연구소장도 "2050년에는 현재 인간의 일자리 절반가량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으로 전망했다.

■ '일자리 문제' … 정부의 '분배' 역할 강조

물론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도 있다. GE는 인공지능과 3D프린팅, 빅데이터와 선업로봇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동력과 관련된 분야에서 20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럼에도 일자리의 총량은 감소할 것이라는 게 대부분 미래학자들의 의견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분배'역할에 대한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박 원장은 예견했다. 강연회에서 워첼 소장은
"디지털화 수준이 상위 10% 이내에 든 기업이 전체 기업이익의 45~55%를 가져갈 것"이라며 "이윤 독식으로 기업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근로자의 임금 수준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등 사회구조 전반적인 개편이 예상되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도 요구된다.

박 원장은 '기본소득제도' 적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재산, 노동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기본소득제 도입을 둘러싼 재계의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일각에서는 저성장 기조를 돌파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오히려 비경제활동인구를 증가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하지만 미래학자들 대부분은 기본소득제도를 시행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전 노동부장관인 로버트 라이시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가'에서 "기술 진보로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기술을 가진 소수로부터 기술의 산물을 구매하고자 하는 다수에게로 소득 재분배가 일어나야 경제를 돌릴 수 있다"며 "기본소득제가 소득 재분배 효과를 일으키는 해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현재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제 시행이 활발하다"며 "핀란드 정부는 올해 1월부터 2018년까지 실업자 2000명을 대상으로 560유로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실험에 착수했다"고 사례를 들었다. 핀란드 뿐만이 아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한 빈곤해소 효과 파악에 나선다.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 창업 육성 기업 와이콤비네이터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기본소득제를 실험 중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아젠다로 '기업 생존'과 '일자리 문제'를 꼽은 박 원장이 마지막으로 제시한 미래 덕목은 '도전 정신'이다. "미래는 약한 자들에게는 불가능이고, 용기 있는 자들에게는 기회이다"(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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