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신 경제산업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1467년(조선 세조13년)에서 시작해 백년 넘게 이어진 일본 '센코쿠시대(戰國時代·전국시대)'는 일본사에서 전무후무한 혼란기였다. 강자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자를 침탈하고 지배하는 약육강식이 세상의 법칙이었고, 하극상(下剋上)과 배신, 음모가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일본 수군 제일의 맹장이었지만 우리에겐 한산도와 명량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이순신 장군에 연거푸 패하는 무능한 장수로 기억되는 도도 다카도라(藤堂高虎)는 "주군을 7번 바꾸지 않았다면 무사라고 말할 수 없다"며 자신의 배신의 역사에 대해 기염을 토할 정도였다.

배신은 형제자매 친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 전국 통일의 초석을 다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도 통일 과정에서 자신을 따르지 않는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를 공수동맹 관계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협공하다가, 매제인 아사이 나가마사(浅井長政)가 자신을 배신하고 아사쿠라를 도우면서 큰 위기를 겪는다. 아사이 나가마사는 한때 오다의 천하포무(天下布武·일본 전국 통일)의 야망에 든든한 협력자이기도 했었다. 어제의 동지가 순식간에 원수가 된 것이다.

도시바 메모리부문 매각이 갈수록 혼전 양상이다. 지난 6월말 SK하이닉스를 포함한 한·미·일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는 발표를 한 뒤에 협력사인 웨스턴디지털(WD)의 소송 압박으로 매각결정이 매듭짓지 못하더니, 어느 순간 WD를 포함한 신 한·미·일연합에 독점협상권을 주는 급반전을 보인다. 이제는 기존 한·미·일 컨소시엄에 애플이 참여하고, 훙하이에 소프트뱅크가 조력군으로 등장하면서 도시바가 인수후보 3곳과 모두 협상을 벌이며 매각결정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이익 앞에선 친족에게도 신의나 양보가 없었던 일본 전국시대의 양상이 '재림'한 꼴이다. 하지만 일본 전국시대는 결국 은근과 끈기로 이 모든 배신과 모략의 역사를 이겨 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마감된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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