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훈 중위 사건에서 나타난 군 의문사 수사 문제점을 되짚다

[일간투데이 정우교 기자] 1998년 2월 24일, 북한 관측용으로 지어진 JSA 241GP 지하벙커. 한 청년장교가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채 발견됐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훈, JSA내 경계부대 소대장으로서 계급은 중위, 나이는 당시 25세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1일, 국방부는 그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사건 발생 후 순직으로 인정받기까지 19년, 그 긴 시간동안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오늘은 군 의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는 '故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벙커에서 머리에 총상을 당해 숨진 고(故) 김훈 육군 중위가 19년 만에 순직 처리됐다. 국방부는 "지난달 31일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열어 '진상규명 불능' 사건인 고 김훈 중위 등 5명에 대해 열띤 논의 끝에 전원 순직으로 결정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사진은 고 김훈 중위가 육사졸업식에서 부친인 당시 1군단장 김척 장군과 소위임관을 축하하며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 19년 전, 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참고 : 2014년 4월 5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934회 ‘JSA 김훈중위. 오른손의 미스터리’]

19년 전, 군은 김 중위의 사망 후 사인을 ‘자살’로 발표했습니다. 군복무에 대한 부담감과 무력감이 동기였고 자신의 소지권총을 이용해 자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죠. 

그 후, 이어진 국방부가 실시한 3차례 조사와 1999년 법의학자 6명이 모인 법의학 토론회에서도 '자살'이라는 기존 입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체가 발견된 지 40분 만에 사건이 신속하게 자살로 판명났다는 점을 비롯해 이 사건에 대한 의문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故 김 중위의 사체에서는 총을 쏜 손에서 화약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 관자놀이에 남겨진 사입구의 파열 모양, 탄도방향, 정수리의 피멍, 김 중위의 손목시계에 난 흠집 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또 사건 현장에서 사용된 총기에 김 중위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사건현장에서 있던 크레모아(대인지뢰의 일종) 박스가 파손됐다는 점 등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죠. 

특히 크레모아 박스 파손과 손목시계 흠집은 벙커 내부에서 몸싸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최초 사건 현장을 찍은 사진에 담긴 헬멧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과 발견된 총기가 김훈 중위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도 이 사건을 단순한 '자살'로 보기에는 힘들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934회 中

 

■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와 합의한 '총기 격발실험'…의문은 계속됐다 

지난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와 국방부가 합의해 대규모 '총기 격발실험'이 실시됐습니다. 김 중위가 숨진 벙커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했고, 실험자들에게는 법의학 토론회에서 새롭게 제기된 격발자세(엄지 격발)를 취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사격이 끝나자 화약흔 시료 채취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실험 대상자의 오른손 손등에는 뇌관 화약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스스로 총을 쐈다던 故김훈 중위의 오른손에 화약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과 다른 결과였습니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김 중위는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는 것이 성립됩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934회  中


■ 2012년 권익위, 국방부에 '김훈 중위' 순직 권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의문점과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실험 결과는 지난 19년 간 지속적으로 대두됐습니다. 하지만 군은 각각 실험과 의문에 문제를 제기하며 '자살'이라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아주 적은 '예외'의 가능성으로 사건 전체를 성급하게 결론냈던 것이지요. 이러한 국방부의 행태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지난 2012년 권익위는 故김훈 중위 사망원인에 대한 논쟁은 더이상 소모적인 것으로 판단, 관련부처에 '순직'을 권고했습니다. 

당시, 권익위 입장은 "수사 초기 김중위가 '자살'한 것이라는 예단이 부대 내·외부에 지배적이었고 그러한 정황이 수사기관의 수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 현재로서는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규명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라고 최종 판단했습니다.

초동수사의 과실이 김중위의 자·타살 규명 여부를 불가능하게 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징병제 국가에서 군 복무중인 자의 생명권이 침해됐을 때 국가가 그 침해의 원인을 밝힘과 동시에 이에 대한 적절한 위로와 보상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봤습니다. 

 

지난달 2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K-9 자주포 사격훈련중 순직한 故 이태균 상사와 故 정수연 상병의 합동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5년 만에 순직인정…그동안 군인은 수없이 죽거나 다쳤다

권익위의 순직 권고 후에도 국방부가 인정하기까지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난 1일 국방부는 故 김 중위의 순직결정을 발표하며 "기나긴 시간동안 애통함을 가슴에 묻어두었던 유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하며 군 의문사 조기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비단 의문사 문제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달에는 중부전선 최전방에서는 K9 자주포 사격 훈련 중 폭발사고가 발생해 2명의 젊은 병사가 사망했고 5명이 부상을 당했죠. 지난 2015년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병사들은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덜 알려진 부상·사망사례는 더 많습니다. 국방부의 노력은 계속 돼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최근 단거리 발사체로 도발을 이어간 가운데 지난달 28일 오후 강원 화천군 육군 15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열린 입소식에서 입영 장병들이 힘차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우리는 국가와 국민의 충성을…외침에 답할 차례 

본 기자가 군생활을 하던 시절, 육군의 복무신조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이다…(육군의 경우)" 

이 말을 군인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외칩니다. 이는 군인으로서의 책임감과 나라에 대한 충성에 대한 다짐이죠.  2~3년,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의 젊음을 국가에 바친 그들의 선창(先唱)에 이제는 국가의 답가가 있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군에 입대한 청년들과 그들을 군에 보낸 부모, 형제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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