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호 現 경기 의왕시 영농총회장

우리 농업·농촌은 험난한 파도에 휩싸여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 최근의 유례없는 ‘살충제 계란’ 소동부터 전국을 휩쓸었던 조류인플루엔자(AI)·구제역 파동, 가뭄·혹서로 인한 농산물 흉작, 풍작으로 인한 농산물 갈아엎기, 여러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인한 농촌의 피폐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역대 정권마다 농림축산식품 정책의 핵심과제로 경쟁력 확보, 농협개혁과 농축산물 수급안정, 귀농·귀촌 활성화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것은 상징적이다. 중점시책 또한 대동소이하다. 농업분야 정예인력 육성, 연구개발 혁신, 농축산시설 현대화, 농식품 수출 확대, 농협개혁과 경제사업 활성화, 농축산물 수급 및 물가안정, 식량의 안정공급, 귀농·귀촌 교육 및 창업지원, 마을공동경영체 활성화 등을 들고 있다.

농촌이 처한 현실이 이러함에도 국내외 경제전망은 설상가상이다. 한결같이 불확실성과 저성장시대의 지속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농정은 농축산시설 확충과 같은 하드웨어 중심의 경쟁력 강화 정책보다는 경제적·사회문화적·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한 비전과 전략을 체계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농촌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전환을 이룩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할 수 있다.

■조합원을 위한 농협 개혁 시급

한·미, 한·중 FTA로 상징되는 전면개방시대의 내실 있는 대책은 시설투자 확대를 통한 공급능력 확충이 아니라 국내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일이다. 예컨대 농촌주민의 삶과 맞닿지 않는 지표위주의 시책보다는 정부나 시장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농촌사회 내의 사회적 경제영역을 확충하는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 농업·농촌을 위해선 무엇보다 농협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조합 설립 취지대로 조합원을 위한 농협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농정의 절반이라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최대 금융ㆍ경제 단체인 농협중앙회와 그 지주회사들을 보자. 이명박 정권 당시 외국계 컨설팅회사의 용역자문을 받아 의욕적으로 단행한 농협개혁이란 게 기껏 협동조합적인 성분을 쫙 빼버리고 주식회사 기업적인 지주회사체제로 그 이름마저 세계화한 NH이다.

농민조합원과의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든 비협동조합적인 회사조직이 바로 NH 농협개혁의 소산이다. 임직원은 조합원 농가소득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월급을 받고 회장은 수 십 배나 더 받는다고 해도, 대다수 농민 조합원들의 경제와 살림살이가 좋아진다면 하등 잘못된 게 아니다. 그러나 조합원 농민들의 살림은 날로 쪼그라들고 궁핍해지는데 임직원들만 ‘호의호식’하는 지주회사 체제는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현실이다.

■주민편의 위한 행정구역 통합을

농협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협동조합조직이 제도금융과 정책사업에 편중하는 현상을 탈피해 생산자조합원과 지역주민이 하나 돼 농촌지역공동체를 되살리는 운동체 성격을 회복하는 데까지 발전해야 한다. 농정은 농촌사회 내의 양극화가 지나치게 심화되는 현실에 유의하면서 농업의 양적 성장보다는 농촌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반구축을 중심으로 통합적 정책 틀 만들기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농촌 농민은 국정의 실험대상이 아니라 섬김과 돌봄의 대상이다. 이 땅에 생명을 낳고 생명과 환경 생태계와 문화전통을 지키고 가꾸는 다원적 공익기능의 집합체이기에 그렇다. 농업·농촌이 가지고 있는 환경, 생태, 문화 전통, 지역사회 공동체, 도시와 농촌의 상생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감안해 농정은 시야를 보다 넓고 길게 바라보고 펼쳐져야 한다.

그리고 농업·농촌을 살리기 위해선 행정구역 통합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전두환 정부 당시 시를 남발한 후유증이 여간 크고 짙은 게 아니다. 예컨대 경기 시흥군이 현재 7개 시로 쪼개졌다. 면이 시가 되다보니 주민 입장에선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동사무소가 있어야 할 위치이면서도 인근 수원·군포시와 경계인지라 동사무소는커녕 파출소와 우체국도 없이 살고 있다. 시가 다르다보니 농사용 농약·비료 혜택조차 입지 못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시내버스 노선이나 학교도 지리적으로 먼 곳으로 가야 하는 실정이다. 농업·농촌을 위한다면 조합원을 위한 농협 개혁과 주민 생활 편의를 돕기 위한 행정구역 통합이 요청된다. 시급히! 전 경기 의왕시 영농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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