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과 주말이 보장되는 삶

[일간투데이 황한솔 기자] “이곳에는 노는 사람이 없고 누구나 평등하게 하루 6시간씩 노동하며, 그 외 남은 시간은 자유롭게 개인 사생활을 누리고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토머스모어의 유토피아 중에서)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모어가 펴낸 유토피아 사람들은 하루 6시간을 일합니다. 하지만 이런 유토피아 시대를 반영한 것처럼 세계 각 국가들은 근로시간을 단축시키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가족과 친구들보다 직장동료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등 한국인 직장인 앞에선 이런 이야기들이 꿈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지난해 5월에는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혼자 점검을 나갔던 19살 김모 군이 안전사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김모 군은 컵라면 먹을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일하다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깁니다. 지난해 우리 근로자 1인당 노동시간은 2069시간입니다. OECD 평균 1764시간보다 305시간이나 많습니다. 특히, 택배노동자는 2869시간, 버스운전기사는 하루 평균 11.7시간에 이릅니다. 

한 취업포털은 직장인 10명 중 7.8명이 야근을 하고, 1주일 평균 야근일수는 4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야근이 거의 일상화된 셈입니다. 수면시간도 OECD 최하위로 쉬지않고 일하는 나라입니다. 

주4일제와 하루 6시간 근무가 세계적인 추세인 이유는 휴식이 생산성에 기여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주 근로시간이 50시간을 넘어서면 생산성이 급격하게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일의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독일의 노동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짧지만 생산성과 효율성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연구결과를 무시하고 여전히 야근에 목메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나 법정 근로시간은 1989년 기준 주 44시간에서 2004년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했습니다. 따라서 현행 근로기준법은 우리나라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1일 8시간, 일주일 40시간, 연장근로는 12시간으로 제한해 총 52시간입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법안에 명시된 일주일은 평일 5일만 계산한 것으로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서 제외한다’라는 행정지침해석에 따라 노동자들은 토,일요일 근무 8시간씩 총 16시간을 초과근무가 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최대 근무시간이 68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운수,통신업과 물품판매,보관업 등의 업종은 예외입니다. 노사의 서면합의가 있으면 이들 노동시간은 주 12시간 초과근무가 가능합니다. 게다가 별도의 상한선이 없고 휴식시간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 24시간 일해도 위법이 안되는 현실입니다.

근로자들은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기 때문에 급여를 유지한 채 근로시간을 줄여달라고 말하고 있지만 기업입장에서는 그렇게 된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반영돼 주당 52시간 이상 할 수 없는 경우 기업이 추가 고용으로 연간 12조3000억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추산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노무관리 어려움 때문에 고용 인원이 늘어나는 것 자체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근무시간 단축제도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해지자 일과 휴식의 균형을 중시하는 청년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됩니다.


현재 일본에서 주 3일 이상의 휴무제를 도입한 기업은 전체 10%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일본 정부의 장시간 노동 규제 등 근로방식 개혁방침과 맞물려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IT대기업인 야후 재팬에서도 지난해부터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했습니다. 야후는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우선 주 2일 휴일을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아닌 다른 요일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먼저 시행하고 순차적으로 휴일을 늘리는 방안을 시행 중입니다.

이웃나라 일본도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현재 국내 대기업 중에 공식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한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기업들이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면 생산성이 낮아지고 인건비 등 제반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탄력근무제나 야근금지 등으로 직장생활을 개선하려는 모습은 보이고 있지만 근무일수를 줄이는 획기적인 근로개혁은 아직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소기업들 중에서도 극소수로 주4일 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주5일 근무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과거 학교에서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놀토’ 처럼 ‘놀금’이나 ‘반금(금요일 오전 근무)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획기적인 근로개혁은 너무 이르다는 분위기가 대부분입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도입되기엔 너무 이르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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