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문제가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8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1천400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액수는 더 많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한은 자금순환동향 통계의 가계부채(가계에 봉사하는 비영리단체 포함)는 지난해 말 1565조여원에 달했다. 외화내빈!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경제현실이다. 한국의 경제규모 대비 가계부채가 세계 주요 43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가계부채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택담보 대출을 죄지 않고는 가계부채 증가에 제동을 걸기 어렵다. 은행권 가계대출의 경우 70% 이상이 주택담보 대출이다.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 대책으로 주택담보 대출 규제를 준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내년부터 다주택자의 신규 대출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 신 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은 이미 시행 중인 양도소득세 중과에 더해져 다주택자에게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 이롭게 하는 정책 시행 요청

그런데 빚을 못 갚아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 중 60% 가까이가 중산층이라고 한다. 간과할 수 없는 일은 중산층 몰락의 주범은 ‘부동산 한파’라는 사실이다. 최근 서울 중심으로 집값이 오르고 있다지만, 미국 금리가 또 인상될 전망이어서 불안감을 씻을 수 없다. 국민의 재산이 묶이지 않도록 문재인정부의 세심한 부동산 정책이 요청된다.
‘논어’의 가르침을 되새겨야겠다. 자장(子張)이 스승 공자에게 여쭈었다. “무엇이 백성에게 은혜로우며, 또 낭비하지 않는 것입니까(何謂惠而不費).” 공자는 대답했다. “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는 것을 근거로 그들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로 인도하는 바, 이것이 백성에게 은혜롭되 낭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因民之所利而利之 斯不亦惠而不費乎).”
특히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부익부빈익빈을 심화시킨다. 자칫 잘사는 10%와 못사는 90%의 빈민을 양산할 수도 있다는 극단적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순자’는 일찍이 고루 잘사는 세상을 꿈꾸며 이렇게 말했다. “백성들이 여름에는 더위의 피해를 입지 않고, 겨울에는 추위에 얼지 않게 하며, 급할 때는 힘을 상하지 않게 하고, 태평할 때 농사시기를 놓치지 않게 하며, 일이 이뤄지고 공이 세워지게 하는 것은 바로 상하가 함께 잘살기 위함이다(使民夏不宛喝 冬不凍寒 急不傷力 緩不後時 事成公立 上下俱富).”
정부 '가계부채 대책'의 윤곽이 드러났다. 기존의 DTI 산정 방식을 바꾼 신(新) DTI와 모든 금융부채의 원리금과 소득을 따져 대출해주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신 DTI는 내년부터 적용되고, 더 강력한 대출규제 수단인 DSR은 2019년부터 시행된다. 또한 분양주택의 중도금 비율(60%)을 40% 또는 50%로 낮추는 대신, 잔금 비율(현행 30%)을 그만큼 높이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다음 달 추석 연휴 이후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달 23일부터 다주택자 DTI 한도가 30%로 낮춰진 데다 신 DTI 등이 시행되면 다주택자들은 더 돈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미시적 진단 바탕 처방 모색하길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가계부채 대책에는 아파트 등 주택을 살 때 무리하지 말고 예상소득으로 대출 원리금을 갚을 수 있을 만큼 빌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여기에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 옥죄기로 주택 투기수요를 차단해 주택시장 불안을 잠재우겠다는 정책 의지도 반영돼 있다. 내년부터 시행될 신 DTI에는 대출 시점의 소득 개념이 아닌 대출 기간의 평균 예상소득을 쓴다. 급여가 오를 신입사원 등 젊은 층에는 유리하지만 임금피크나 퇴직을 앞둔 장년층에는 불리한 구조다. 또한 대출심사에 기존 주택담보 대출의 원금까지 반영하기 때문에 기존 대출자의 추가 담보대출은 대폭 줄거나 아예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신 DTI 도입은 더 강력한 DSR의 2019년 전면시행에 앞서 부동산 시장 움직임을 살펴보려는 사전포석의 의미도 담고 있다.
가계부채 종합관리 대책이 화급하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선 주택담보대출 외에도 생활비 명목의 생계형 대출, 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의 전월세자금 대출, 자영업자들의 사업자금 대출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새로운 미시적인 진단과 제대로 된 처방을 모색하길 바란다. 가정이 빚 없이 잘 사는 게 국민행복지수를 높이는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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