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간 불거졌던 대한축구협회 논란을 되짚어본다

[일간투데이 정우교 기자] 지난 14일, 대한축구협회 전 회장 등 임직원 12명이 업무상 배임으로 형사 입건됐습니다. 조중연, 이회택, 김진국, 김주성, 황보관 등…축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지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축구협회 공금을 유흥업소, 골프장, 피부미용 등 사적으로 사용했고 해외 축구경기 참가할 때도 가족의 항공료를 공금으로 결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조중연 전 대한축구협회장. 사진=연합뉴스

 

■ "5~6년 전의 일이다"…불편한 사과문   

이에 대해 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는 지난 15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축구협회는 사과문을 통해 “과거 5~6년전에 부적절한 관행과 내부 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발생했던 행위였지만, 시기와 여유 여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 사건이 “과거 있었던 부적절한 관행과 내부관리 시스템 미비 때문에 발생했던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 문장 뿐만 아니라 사과문의 전체적인 맥락은 아무리 읽어봐도 불편합니다. 

굳이 사과문에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내용과 동일하다”는 내용을 넣은 것까지 말입니다. 

어쩌면 최근 축구협회의 행태 덕분에 마음이 더욱 꼬여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이 사건으로 마음이 돌아선 것은 비단 본 기자 뿐만이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광장’에는 이미 ‘대한축구협회 비리 조사’에 대한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며 다음 ‘아고라’ 페이지에서는 축구협회 정몽규 회장·김호곤 부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청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사자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당장 월드컵에 나가거나 히딩크 감독을 다시 부르는 일보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다시 사과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사과문에서 가리키는 시기, 지난 2012년에도 축구협회는 말이 많았습니다. 절도와 횡령으로 회사를 떠나는 직원에게 거액의 위로금을 전달한 사건이 터진 것이지요.  

다음해인 2013년, 대한축구협회는 창립 80주년 기념 비전선포식에서 이런 비전을 발표합니다. 

「꿈꾸고, 즐기고, 나누며」
「축구, 그 이상을 위하여」

회사 공금을 나누고 즐기며, 축구 그 이상의 일들을 해온 축구협회가 혹 자기소개를 비전에 담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축구팬의 꿈은 도대체 어디에 써버린 겁니까.

 

김호곤 기술위원장 카톡 캡처. 사진=연합뉴스

 

■ 히딩크 감독의 제안…이렇게 밖에 대응하지 못했나  

히딩크 감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감독이 낫다는 비교보다 한국 축구사의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을 대하는 축구협회의 모습이 조금 부끄럽다는 이야기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여름 축구협회 내부 인사에게 한국 축구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고 축구협회에서도 원한다면 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한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거스 히딩크 전 2002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14일 낮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한국 국민이 원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김호곤 부회장·기술위원장은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며 부인해 왔습니다.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어떠한 접촉이 없었고 불쾌한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자회견 이후, 히딩크 감독의 연락을 받았다고 시인·해명을 했습니다. ‘찾아보니 메시지를 받긴 받았더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대한민국을 4강에 올려놓았던 사람이 보내온 반가운 제안에 꼭 이렇게 대응해야 했을까요? 꼭 감독이 아니어도 이 명감독의 풍부한 경험과 조언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 대한민국팀에게 분명 도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지난 2013년 10월, 하나은행 초청 축구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 대 브라질의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차범근 해설위원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감독선임에 대한 문제…그곳은 늘 그래왔다 

생각해보면 축구협회의 국가대표 감독 선임에 대한 어설픈 행보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계속됐습니다. 지난 1998년, 차범근 감독은 부임한지 1년 3개월 만에 월드컵 기간 중, 프랑스 현지에서 해임됐습니다. 본선에서 2연패를 당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이는 초유의 사태였고 축구협회가 국민들의 비난이 두려워 차 감독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는 여론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당시 차 감독의 한국 입국 소식을 전한 뉴스의 리포트를 소개합니다. 이것만큼 상황을 잘 표현한 말은 없다고 봅니다. 

「 IMF에 주눅 든 국민들의 숨통을 트여주며 한국팀을 프랑스행 비행기에 오르게 했던 거인은 총체적 문제 덩어리인 한국 축구라는 십자가를 홀로 짊어진 채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 1998년 MBC 뉴스

차범근 감독뿐만 아닙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직후, 조광래-최강희-홍명보,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까지…준비가 되지 않은 감독이나 주먹구구식 선임으로 지휘봉을 떠맡겼고 성적에 대한 비난은 오로지 감독 혼자 감당케 했습니다. 그때 축구협회는 어딨었나요. 혹시 감독의 등 뒤에 있진 않았나요. 

이렇듯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은 늘 답답했고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운영은 당연히 성적과 경기력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습니다.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에 성공한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환영행사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으로부터 축하꽃다발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그때처럼 왜 가슴이 뛰지 않을까요?

앞서 언급한 최근 축구협회의 행태 때문인가. 지난 6일,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달성한 소식에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예전처럼 달랐습니다. 예선에서 보여준 답답한 경기력과 실종된 투지에 대한 비판이 계속됐죠. 

하지만 더욱 흥을 깨뜨리는 것은 월드컵 9회·36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보여준 축구협회의 행정 및 운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1일 스포츠경향은 축구협회 집행부가 월드컵 본선 진출 자축연을 준비했다가 직원들의 만류로 계획을 취소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런 눈치 없는 행태들입니다.

최근 몇 년 간 국민들은 한국축구 전체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작 협회의 사업계획을 살펴보면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매년 ‘확대’, ‘활성화’, ‘도약’, ‘상승’입니다. 운영에 대한 내실을 다지는 것이 아니라 외형적인 부분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직도 2002년의 영광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와 경기에서 5:0으로 지던 밤. 대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쉽지 않았습니다. 늦게까지 기다렸지만 피곤하지도 않았죠. 슈퍼루키 이동국의 슈팅과 골키퍼 김병지의 선방에 밤새도록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로 가슴이 뜁니다. 공금횡령 등 비리를 일삼았다는 점, 행정·운영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점, 축구팬들을 기만했다는 점, 외적 성장에만 치우쳤다는 점,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등…이런 것들에 실망해 두근거리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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