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함을 징치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파사현정(破邪顯正)! 그 주체는 ‘법조삼륜’. 판사, 검사, 변호사를 지칭한다. 공공의 선을 구현하는 세 개의 바퀴는 유기적인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법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횡포와 겁박, 무성의한 재판과 판결문, 법 장사꾼으로 전락한 일부 변호사 등 사람과 사회에 대한 애정 결핍의 법률가들이 적지 않은 세상이다.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위한 고뇌와 번민을 하는 법조인이 그리운 이유이다. 불의(不義)의 시대가 아니라면 말이다. 개방화시대,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법조인의 변화가 요청되고 있는 이유이다. 나라를 다스림에는 늘 같은 게 없으니 세상에 따라 바꿔야 하고, 때에 따라 법을 변화시켜 백성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이른바 법조개혁이다. 물론 사법부의 최고수장은 대법원장이다. 대법원장이 누구인가. 대법관이 아닌 법관의 임명권을 갖고, 기타 사법행정권을 총괄하는 사법행정상의 최고책임자이다. 헌법재판소재판관 지명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 지명권, 법원직원 임명권과 사법행정권 등이 있다.

■청문보고서 채택 반대하는 야당

사법행정 권위의 상징인 이런 대법원장 후보자가 ‘큰 바람’을 타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국회 인준 문제가 정국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만료일이 24일이니 1주일도 남지 않았다. 김 후보자 인준 문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지난 12∼13일 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김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를 놓고 연일 논의하고 있으나 입장이 맞서고 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능력이나 도덕성 면에서 김 후보자의 결정적인 흠결이 드러나지 않은 만큼 청문보고서를 '적격' 의견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청와대와 여당은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선 양 대법원장의 임기만료일인 이전에 임명동의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18일 출국하기에 앞서 김 후보자 인준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김 후보자의 이념 편향성과 '사법부 코드인사 우려' 등을 이유로 들어 사법부 수장으로서 부적격자라면서 청문보고서 채택에 반대하고 있다. 보수 야당인 바른정당도 "사법부의 독립을 지킬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김 후보자의 임명에 부정적이다. 40석으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속내는 복잡하다. 국민의당은 김명수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에 붙이자는 입장이다. 당론은 없다.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자율 투표하기로 했다. 자칫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 같은 인준안 부결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

국회는 김 후보자가 ‘완벽한 이상형의 법관’은 아니더라도 임명동의를 하는 게 온당하다고 본다. 김 후보자가 비록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과 그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맡는 등 법원 내 대표적인 진보ㆍ개혁 인사로 분류된다고 해도 사법부에 주어진 본령에 충실할 수 있는 법관이라는 점이다.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해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할 적임자임은 그가 살아온 경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른바 재판불성실과 전관예우 등에 젖은 ‘사법부 적폐’를 바꿀 수 있는 인사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법부 수장 공백 방기는 안 될 일

사법 개혁은 시대적·국민적 요구다. 우리나라 사법 신뢰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2개 회원국 중 39위로 최하위권이다. 개혁 요구가 한껏 차오른 지금이 법원 내부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사법부를 향한 불신을 회복할 적기이기도 하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에게 사법개혁의 대임을 맡겨볼 만하다.

더구나 대법원장 인준은 각 당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미뤄질 일이 아니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 수장의 공백을 입법부가 방기하는 일은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국회의 견제권을 남용하는 것으로, 삼권분립의 틀을 깨는 심각한 행위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대표적 법가 ‘한비자’의 법정신을 되새겨보자. 그는 이렇게 외쳤다. “상식적 이치에 맡겨 간사함을 제거해야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任理除姦統萬民). 공공의 이익을 좇아 법을 받들면 골고루 이익을 나눌 수 있다.(從公奉法得平均)” 배상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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