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도시바 메모리 인수 실익 누리려면 '첩첩산중'
중국, '반도체 굴기' 대규모 투자…미국, 인텔·애플 등 탑 기업 투자 확대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독식하다시피 했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도시바 메모리 부문 매각으로 시장참여자들간의 합종연횡과 경쟁 속에서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도시바 로고.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올해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액이 단일 품목 사상 최고치인 900억달러(약 100조원)를 돌파하는 사상 최고의 '슈퍼 호황'을 즐기고 있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한·미·일 컨소시엄'을 통해 도시바 메모리 부문 인수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하지만 컨소시엄 내부적으로는 투자 방식이나 규모 등이 최종적으로 매듭지어지지 않았고, 도시바 메모리 인수라는 목전의 공동목표 때문에 참여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구체적인 내부 지배구조 논의 과정에서 어떤 결론을 도출할지 아직도 안개속이다.

또한 외부적으로는 생체인증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의 등장으로 관련 업체로부터 더 빠른 메모리에 대한 수요가 밀려들면서 중국이 국가적인 차원의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인텔이 지난 2015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복귀하는 등 시장수익을 찾아 해외 경쟁업체들이 속속 들어오면서 메모리 시장의 각축이 한층 격렬해질 전망이다.

▲SK하이닉스 연합 도시바 메모리 인수로 반도체 시장 재편 가속화

24일 업계와 증권투자계의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독식하다시피 했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도시바 메모리 부문 매각으로 시장참여자들간의 합종연횡과 경쟁 속에서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1일 공시를 통해 "도시바 이사회가 SK하이닉스의 파트너인 베인캐피털이 포함된 컨소시엄과 매각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의했다"며 "아직 주요 사항에 대한 협의가 남은 만큼 향후 딜 프로세스에 따라 SK하이닉스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협상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할 경우 당장 실익을 보지 않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낸드플래시 시장이 계속 확대되고 있고 도시바메모리는 낸드 플래시 개념을 고안한 최고의 개발 업체로 원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지난해 낸드플래시 메모리 세계 시장 규모가 약 367억달러(약 41조4000억원)로 추산하고 오는 2021년까지 40%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대만의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도시바는 17.5% 점유율로, 이 부분 1위 삼성전자(35.6%)에 2위를 달리고 있다. 이번 도시바 인수전의 '딜브레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 웨스턴디지털(WD)은 17.5%로 3위며, D램 부문에서 삼성전자와 자웅을 겨루는 SK하이닉스는 9.9%의 점유율로 5위에 기록됐다. 낸드플래시에서 약세인 SK하이닉스로서는 도시바와의 단순 점유율 합산만으로 시장점유율 27.4% 2위 업체로 올라서면서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한자리수대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갈수록 치킨 게임화 되고 있는 낸드플래시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살아남는 데 도시바의 원천기술이 미세공정 기술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낸드플래시 1위 삼성전자는 이미 4세대 기술력을 갖춘 데 반해 SK하이닉스는 최근에서야 4세대 3D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한 형편이다.

권성률 동부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도시바메모리의 지분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기술적인 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에서 찾아야 한다"며 "SK하이닉스는 낸드 칩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의결권 확보, 일본 정부 기술 유출 우려, 내부 협상 난제 많아

하지만 아직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로 어떤 구체적인 실익을 얻을 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세부 인수 조건과 기술 이전 정도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도시바는 여전히 경영권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반도체 기술의 해외 유출에 경계를 나타내고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로 이들 간의 이해조율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우선 의결권 확보다. SK하이닉스는 당초 알려진 전환사채(CB)가 아닌 단순 융자로 자금을 댐에 따라 회사의 주요한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지분 확보가 쉽지 않다. 도시바는 해외기업이 미래에 보유할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조건을 명시함으로써 당면한 채무 압박에 도시바 메모리사업을 매각하지만 경영권은 계속 갖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돈은 받되 경영간섭은 거부한 꼴이다.

다음으로 이번 인수의 주요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낸드플래시 기술 확보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만일 도시바의 원천 특허를 이용하게 된다면 4세대(64단 또는 72단) 낸드플래시 기술을 더 안정화하고, 5세대 제품은 개발 시기를 앞당겨 급성장의 토대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관건은 지분의 50.1%를 보유할 도시바와 일본 정부가 원천기술의 해외 유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잇단 소송전 압박을 통해 인수 성사 단계까지 갔던 것으로 알려진 웨스턴디지털이 또 다른 결정적 제안을 내놓는다면 최종 계약 전에도 판이 뒤바꿔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연합 내에 추가로 들어온 애플과 델, 시게이트, 호야 등 다양한 참여자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내부협상도 지난할 것으로 보인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기술이나 생산량에 얼마나 접근이 가능할지 여부가 이번 인수전의 관건이다"며 "인수 성공 후에도 지분의 50.1%를 보유할 일본 측에서 SK하이닉스에 대해 기술이나 생산량 유출을 엄격히 제한한다면 하이닉스 입장에서 투자 실익이 없게 된다"고 꼬집었다.

시장 일각에서는 수조 원에 달하는 인수자금 때문에 SK하이닉스의 자체 3D 낸드플래시 투자가 늦춰지면 오히려 SK에 부메랑이 되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민희 흥국증권 연구원은 "도시바메모리의 생산 설비 확보나 기술력 획득 등 당장의 실질적인 이득은 적어 보인다"며 "하지만 향후 도시바와 3D 낸드 및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대한 기술 협력이 더 강화되고 잠재적 경쟁사에 매각되는 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성장 수혜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국, 정부 지원 속 대규모 투자…미국, 인텔 시장 재진입, 애플, 메모리 시장으로 눈돌려

한편, 사상 최고의 반도체 메모리 호황 속에 해외 업체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중국은 오는 2025년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원 속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칭화유니그룹은 우한, 청도, 난징 등의 지역에 반도체 제조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84조원을 투자했고, 내년 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시노킹 테크놀로지는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D램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푸젠진화반도체는 대만 UMC와 협력해 D램 생산을 위한 속도를 내고 있다.

비록 현재 우리나라 업체의 높은 기술력과 비교해 4~5년 수준의 격차를 보이고 있지만, 기술 수준이 낮은 PC용 D램과 레거시 D램를 시작으로 서서히 치고 올라 올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적어도 오는 2020년 중국도 D램 시장에서 의미 있는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에서는 전통의 업체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이 메모리 반도체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CPU에 집중했던 인텔이 지난 2015년 시장 재진입 이후 지난해 부진했던 모바일 부문 대신에 메모리 부문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 공격적인 투자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해 애플은 이번 '한·미·일' 연합에 참가하면서 갈수록 확대되는 스마트폰 메모리 수요에 대응해 메모리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부품의 안정적인 수급과 기술력 향상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세계 수출 시장점유율 27.0%로 1위를 차지한 우리나라가 중국 반도체 업체들과의 기술격차가 줄어들고 인텔이 재진입하는 등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는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선제적인 투자로 기술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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