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 경쟁적으로 단말기 완전자급 입법 대표발의…국민의당, 속도조절론
제조업체, 반대…통신사, 유보적…유통업체, 강력반대…학계, 기존 제도 보완해야

▲ 가계통신비 인하 대책으로 휴대폰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제시되고 있지만 제조사나 이동통신사 등 관련 대기업뿐만 아니라 유통판매점 등 다종다양한 이해관계자별로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여·야 의원들과 정부도 의견의 합치를 이루지 못해 애초 의도대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의 해법이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당 이용호 정책위의장, 김경진 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주제로 열린 이동통신 단말 유통시장 발전을 위한 제도 개선 관련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삼성 갤럭시노트8·LG V30·아이폰 8(X) 등 최근 속속 나온 올 하반기 프리미엄폰이 잇따라 백만원 내외의 출고가를 찍으면서 정부의 선택약정할인율 상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체감 통신비는 여전히 높다.

이에 이러한 고가 스마트폰의 출고가 거품을 빼는 해결책으로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제시되고 있다. 완전자급제는 일반 가전제품처럼 휴대폰 제조사 및 전문매장에서 단말기를 판매하고 이동통신사와 대리점은 통신서비스 가입만 할 수 있는 제도다. 단말기기와 통신서비스를 따로 사게 되면 제조사는 그간 쓰던 보조금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단말기 가격을 낮추게 되고, 이통사도 단말기로 고객을 유인할 수 없기 때문에 요금제와 서비스로 승부하게 된다.

시장이 한결 투명해지고 소비자 혜택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다. 녹색소비자연대는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이통사의 보조금 절감으로 휴대폰 요금이 6천원에서 1만2천원 인하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박홍근(더민주당)·김성태 의원(자유한국당),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 대표발의

폭증하는 국민들의 가계통신비 불만에 정치권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지난 18일과 25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휴대폰과 이동전화서비스 판매를 분리하는 단말기 자급제 도입의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이들 개정안의 취지는 완전자급제 실시로 소비자들이 저렴한 단말기를 구매하고 언제든 통신사를 변경함으로써 자신에게 맞는 합리적 요금제를 택해 통신비 인하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원금 지급 조건으로 고가 요금제나 일정 기간 이상 부가서비스 사용 의무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이유로 위약금을 징수하는 내용의 계약 체결을 하지 못하도록 해 소비자를 보호하고 있다. 부칙에는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현행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폐지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각론에서는 조금씩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김 의원 법안은 이통사 직영 대리점을 제외한 영세한 기존 이동통신 판매점과 대리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신고하면 단말기를 팔 수 있게 한 반면, 이동통신3사 및 직영 대리점, SK네트웍스 등 이통사 특수관계인은 단말기 판매를 금지했다. 또한 중소 판매점 등이 자금 사정으로 프리미엄폰 구입을 하기 어려울 경우 '단말장치 공급업자'가 제조사에서 매입해 중소 판매점에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박홍근 의원 법안은 김 의원 법안처럼 이통사 직영대리점을 제외한 기존 이동통신 판매점과 대리점도 신고를 통해 단말기를 팔 수 있게 한 반면, 이통3사 및 직영대리점, SK네트웍스 등 이통사 특수관계인뿐 아니라 제조사 및 하이마트 같은 대기업과 그 특수관계인이 운영하는 유통점까지 휴대전화 판매를 금지한다.

▲국민의 당 "영세 판매점 어려움·소비자 불편 야기" 회의적…과기정통부도 유보적

이에 반해 국민의 당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영세한 통신 판매점만 어려움을 겪게 돼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비자 불편과 비용만 늘 것이다"며 "법률로 강제한다면 기업의 영업활동을 제한하게 돼 헌법에 어긋나고, 소비자 선택권과 편의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또한 신중한 모습이다. 지난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한 ITU 텔레콤월드 2017에 참석한 유영민 장관은 "단말기 자급제는 소비자를 포함해 모든 이해 당사자가 유익한 방향으로 가야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법이 시행되면, 통신 및 단말기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권이 상당 부분 줄어들어 정부가 이를 우려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삼성전자, "글로벌 시장 영향 고려 도입 반대"…LG전자, 암중모색

제조사와 통신사별로도 각자가 처한 시장 상황에 따라 그 입장이 미묘하게 엇갈린다.

우선 제조사별로 살펴보면,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세계시장 1위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삼성전자는 국내 스마트폰에만 지원금을 늘리거나 할인할 경우 해외 이동통신사들이 같은 수준을 요구해오기 때문에 글로벌 마케팅 전략상 안 된다며 완강한 반대 입장이다.

김진해 삼성전자 한국총괄 전무는 지난 12일 갤럭시노트8 국내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스마트폰 시장 가격은 세계적으로 연동되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 5%정도로 작은 규모인) 국내 시장만 보고서 가격을 낮추는 일은 불가능하다"며 "완전자급제가 되더라도 큰 폭의 단말기 가격인하는 실현되기 힘들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단말기 자급제는 기존 제조-유통산업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LG전자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 가운데 갈수록 강화되는 삼성-애플 양강구도에서 완전자급제를 통해 LG 스마트폰의 질과 가격경쟁력, 이른바 '가성비(가격대비 성능)'를 부각시켜 시장점유율 반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SK텔레콤, "적극 찬성"에서 신중모드 전환…KT·LG유플러스, "현상 유지"

통신사들의 셈법은 한층 더 복잡하다. 이동통신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은 그동안 '적극 찬성'의 의사를 보여왔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6월 그룹확대경영회의에 "단말기 유통에서 손을 떼야 한다"며 "제조사들도 단말기 자급제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임형도 정책협력실장은 "이용자부터 유통시장까지 모든 이해관계자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의 당 의원들 주최로 열린 '이동통신 단말 유통시장발전을 위한 제도개선 방향-단말기 완전자급제가 대안인가' 토론회에서)

반면 KT와 LG유플러스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양상이다. 김충성 KT 상무는 "완전자급제가 적용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다양한 측면에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고, 강학주 LG유플러스 상무는 "완전자급제는 시장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으므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오랜 기간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위 국민의 당 토론회). 고가의 스마트폰을 산 소비자들이 이통3사간 요금 차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완전자급제가 실시되면 브랜드 인지도 1위인 SK텔레콤으로 몰릴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중소유통업계 "삼성-애플 독점 국내 시장에서 자급제 실시 출고가 인하 효과 없어"

중소 유통업계는 자급제 도입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박선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부회장은 "자급제 법안은 휴대폰 판매상인들이 중간유통과정에서 이윤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며 "삼성과 애플이 단말기시장의 85%를 차지하는 국내 시장구조에서 자급제를 실시한다 해서 출고가가 내려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 외산폰은 수억원의 비용과 오랜 대기 시간을 치러야 하는 망 적합성 테스트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자급제 실시로 단말기 유통구조에서 중간과정이 제거됨에 따라 유통마진이 줄어들고, 최종적으로 출고가가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나왔다.

하태규 고려대 경제연구소 연구교수는 "휴대폰 판매점 등 기존 중간유통망이 사라진 자리는 제조사 유통망으로 대체돼 최종소비자가 실제 부담하는 총액은 달라질 게 없다"며 "기존 유통망은 축소되고 단말기 판매를 위한 신규 유통망이 별도로 구성되며 전환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하고 소규모 대리점과 판매점의 희생만 초래할 것"고 설명했다. 이어 "결합유통의 장점인 원스톱 쇼핑이라는 소비자 편익을 없앨 뿐만 아니라 이중유통에 의한 유통 비용만 늘려서 실익이 없는 대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학계, 결합 유통 사라지면서 소비자 편익 떨어지고 비용만 증가…선택약정할인제 보완해야

효과가 불투명한 자급제 대신 선택약정할인 제도 등 기존의 유용한 제도들을 잘 가다듬어 충분히 실효성 있는 통신비 인하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이동통신요금의 25%를 할인해주는 선택약정할인제도는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큰 세계적으로도 파격적인 소비자 친화제도다"며 "자급제가 실시돼 이 제도의 근간이 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폐기되면 이통사가 선택약정에 상응하는 수준의 요금할인 혜택을 자발적으로 제공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국회에서 완전자급제 법안이 발의됐지만 현재 이동통신 생태계를 둘러싼 이해관계자간 입장이 워낙 첨예하게 엇갈려 법 통과·공포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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