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참여연대,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공정위 개정 취지 어긋나
대한항공·한화S&C 등 재벌 총수 일가 사건에서 부당성 입증책임 과도 부과

▲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실과 민주주의 법학연구회·민변 민생경제위원회·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28일 국회에서 '한진·한화S&C 사례를 통해 본 재벌총수 일가 봐주기 판결 비판'이라는 주제로 공동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대한항공과 한화 등 재벌 총수 일가의 일감몰아주기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주식 저가 매각 등을 금지한 개정 공정거래법의 입법 취지를 위반해 법원이 법해석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법원이 입법의 범위를 넘어선 엄격한 법 해석과 원고에게 과도한 입증책임을 부과해 법 제정의 실효성이 퇴색된다는 지적이다.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실과 민주주의 법학연구회·민변 민생경제위원회·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28일 국회에서 '한진·한화S&C 사례를 통해 본 재벌총수 일가 봐주기 판결 비판'이라는 주제로 공동 토론회를 열었다.

▲공정위 입증 책임 완화하는 개정 공정거래법 입법 취지 반하는 판결 계속 나와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최근 사법부가 잇따른 판결을 통해서 재벌 총수 일가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이른바 '일감몰아주기') 등을 금지한 공정거래법 제23조의2의 입법 취지에 어긋나게 재벌 총수 일가의 일감몰아주기 및 경영권승계를 위한 주식 저가매각 등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성토했다.

지난 1일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신설된 공정거래법 제23조의2를 처음으로 적용해 대한항공과 그 특수관계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유니컨버스 간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싸이버스카이는 대한항공 내 기내 면세품을 독점 판매하는 비상장계열사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자녀인 조현아·현태·현민 3남매가 3분의 1씩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유니컨버스는 대한항공 콜센터의 위탁 운영과 전산시스템 장비의 유지·보수를 맡고 있는 회사로 조 회장을 비롯해 세 자녀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오는 11월 1일 대한항공과 합병하기로 돼 있다.

재판부는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에 대한 대한항공의 일감몰아주기 금지 행위 위반 금액의 규모가 미미하고 공정위가 부당이익 제공의 기준이 될 '유사거래의 정상가격'을 추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내부 거래가 유리한 거래라는 점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 일감몰아주기 판결, 입법 범위 벗어난 과도한 입증 책임 부과

이에 대해 한경수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지난 2014년 일감몰아주기를 금지한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을 개정·도입한 이유는 공정위의 입증책임을 완화해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위법성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며 "이러한 입법취지에 따르면 회사법상 선관의무(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 의무) 등을 위반하는 행위를 통해 총수 일가 등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켰는지 행위 여부만 따질 뿐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공정위에게 유사거래의 정상가격을 추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기존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에서 규정하고 있던, 지원행위가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었다"며 "이에 반해 새로 개정된 공정거래법 제23조의2에서 요건을 '현저히'가 아닌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완화했는데도 별도의 부당성 심사를 요구하는 것은 법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난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이규남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위원장은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인사상의 노무관리권을 쥐고 있는 총수 일가의 지시에 의해 자신이 소속된 대한항공이 아닌 총수 일가의 사적 회사의 이익을 위해 기내에서 판매행위를 강요받았다"며 "물건을 많이 판매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물건을 판매하지 못한 사람은 공시를 통해 압박함으로써 승무원이 본업인 항공운항에 집중하지 못하고 물건 판매에 내몰리면서 항공 안전에도 위해 요소로 작용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지난 12일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주식회사 한화 이사들이 한화S&C 보유지분을 저가에 매각한 혐의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등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한화그룹이 지난 2005년 한화S&C 주식 40만주를 김 회장의 장남인 동관씨(현 한화큐셀 전무)에게 매각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제값을 받고 팔았기에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판시한 것이다.

▲한화S&C 주가 저가 매각 판결, 실체 간과해 내·외부 형식적 승인절차에 과도한 정당성 부여

이에 대해 김종보 민변 변호사는 "대법원은 비상장회사 지분을 재벌총수의 자제들에게 몰아주고 이후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그 회사를 키워 편법으로 경영권승계를 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인정했다"며 "그럼에도 주식 매각이 내부 이사회 승인 절차를 거쳐 이뤄졌고, 외부 회계법인이 주식가격 산정작업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한화 측의 민·형사상 책임을 모두 면책해줬다"고 성토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이는 재벌기업에서 이사회가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지나지 않는 우리나라 경영현실을 간과한 것이다"며 "'수습회계사가 단순 수행한 가치평가가 일부 오류가 있기는 하나 과정 및 결과가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 외부 회계법인이 한화S&C 1주당 가격을 낮게 책정한 것을 문제 삼지 않은 것도 잘못이다"고 지적했다.

박승룡 한국방송통신대(법학과) 교수는 "재판부가 이사회 결의의 하자·회계상 1주당 주식가치 평가의 부당성 등 회사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주요 쟁점에 대해 모든 입증책임을 원고에게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상법상 이사의 자기거래를 제한하는 규정의 취지에 따라 이사회 승인 후 이뤄진 이사의 자기거래에 대해서는 회사의 이익 침해 방지를 위해서 이사회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입증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이날 참석자들은 이 같은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주주대표소송의 원고적격 확대 ▲대표소송 제기 주주의 회계장부 열람권 부여 ▲이사의 책임 제한(연봉 6배 이내) 폐지 ▲근로자대표의 사외이사 추천 ▲상장회사 감사위원 분리 선임·이사선임에 대한 집중투표제 등 상법 개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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