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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성 칼럼] 만든 자와 지킨 자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일본인의 영어발음이 미숙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 모음이 “아, 이, 우, 에, 오” 총 다섯 개 밖에 없으니 영어발음을 제대로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 발음이 없으니, 영어의 lunch는 란치로, dinner는 디나로 발음한다. 그럼에도 일본사람은 영어를 자기 글(가타카나)로 표현하기를 즐겨하고 그 범위도 상당히 넓다. 가타카나는 암기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정리해두면 일본을 아는데 매우 유익하다. 일본사람이 영어에 약하다는 사실에 왜 내 마음이 흐뭇한지 모르겠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이기에 헌법에다 자국의 말, 글, 수도에 관해 언급하는 경우가 있지만, 상당한 나라들은 직접 언급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우리글이 한글이고 우리말이 국어라는 것, 또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이들을 변경하려면 법률의 개정으로는 불가능하며, 헌법을 고쳐야 한다.

■ 세계유일 군주가 만든 문자 ‘한글’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날이다. 1443년 세종대왕은 훈민정음(한글의 옛 이름)을 창제한 뒤, 1446년 반포했다. 새로운 문자를 만들 경우, 문자의 창제목적과 원리를 설명하는 매뉴얼이 꼭 필요한데, 이를 담은 책이 훈민정음해례본이다. 훈민정음해례본은 ‘예의’와 ‘해례’로 구성돼 있는데,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은 글로 한글의 창제목적을, 해례는 한글의 원리를 설명하는 한글의 해설서로,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동안 훈민정음해례본이 존재하지 않아 창제의 원리를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 일본 어용학자들은 우리 문자를 폄하하면서, 고대글자를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거나, 심지어 화장실 창살모양이 그 기원이라고 하는 등, 한글을 짓밟았다. 해례본은 한글의 말문을 연 열쇠이기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광화문 세종대왕의 좌상을 보면, 대왕의 왼손에 책 한 권이 들려있는 데, 바로 훈민정음해례본이다.

해례본이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1940년이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여서, 일제에게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은 용납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국가의 보물을 사재를 털어 구입하고 목숨 걸고 지킨 사람이 있었으니, 간송 전형필이다. 간송은 훈민정음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쳤고, 광복 후에야 세상에 공개했다. 간송이 훈민정음 원본을 구입할 때 천원을 지급했는데, 당시 천원은 서울의 큰 기와집 한 채 값이었다고 한다. 간송의 문화유산의 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황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해례본을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챙겨갔고, 혼란스러운 피난길에서도 이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낮에는 품고 다녔고 밤에는 베개로 베면서 한 순간도 몸에서 떼어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재산을 쏟아 붓고, 이를 지키기 위해 극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간송 덕분에,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의 공적을 기리지 않을 수 없다.

■ 일제시대 간송의 ‘목숨건 보존’ 빛나

한글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자 가운데 목적, 사용법, 원리를 알 수 있는 문자로 유일하며, 백성을 위해 군주가 직접 만든 점에서도 세계에서 유일하다. 그래서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제70호)를 넘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반열에 올라있다. 한글은 제자(制字)의 원리가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다. 14개의 자음과 10개의 모음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소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과학적이며, 그러면서 독창적이기까지 하다. 대부분의 글자가 이웃나라의 문자를 조금씩 변형하여 사용되어온 세계의 문자역사를 볼 때, 우리 한글은 탁월할 정도로 독창적이다.

말과 글은 그 나라의 민족정신이기에 일제는 우리말과 글을 말살하여 민족의 정기를 없애려고 했다. 1942년 12월 일제는 한글을 연구하는 학술단체의 임원 33인을 투옥시키면서, 우리말과 글을 없애려고까지 했다. 저 유명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한글의 역사다. 지구촌시대에 살고 있기에 외래어 사용은 불가피하지만 지나친 외래어 애용은 바람직하지 않고, 한글이 서러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를 만들어주심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준 세종대왕과 목숨 걸고 이를 지킨 간송 전형필 선생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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